'모래성' 위기 맞은 '모래시계 검사'의 아성

'부패 잡는 검사'에서 '부패 정치인'으로
'한나라당 대표' 절정기 사건에 발목 잡혀

입력 : 2015-05-08 오후 3:35:15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8일 검찰에 출석했다.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를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난 지 꼭 20년만이다.
 
그는 '노량수산시장 경영권 강탈사건'을 수사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인 기환씨를 기소하고 '슬롯머신사건'을 맡아 6공화국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을 법정에 세웠다. 광주 전남지역을 주름잡던 폭력조직 국제PJ파를 소탕하기도 했다. 홍 지사는 워낙 튀는 성격이 흠이기는 했지만 검찰에서도 알아주는 ‘한 칼'하는 검사였다.
 
’슬롯머신사건‘은 단연 그를 스타검사로 만들어 준 사건이다. 슬롯머신의 대부와 현 정권 실세인 의원의 결탁이라는 내용 자체도 드라마틱 하지만 8년차 검사가 같은 검찰 출신의 고위 정치인을 법정에 세운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파장을 불렀다.
 
박 전 의원은 사법시험 8회로 홍 지사(사법연수원 24회)보다 16년 선배다. 1972년부터 1985년까지 부산과 서울지검에서 특수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명성을 날린 인물이다. 홍 지사가 박 전 의원을 기소했을 당시 ‘가물치가 올챙이에게 잡혔다’는 우스갯소리 까지 법조계에 돌았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석하기 전 잠시 멈춰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홍 지사는 검사시절 때부터 유난히 부정부패 사범들에 대한 적개심이 컸다. '노량진수산시장 사건'만 봐도 그렇다. 당시 기환씨는 청와대 민정수석가 치안본부 간부 등을 움직여 경영권을 강제로 빼앗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는 기환씨 선에서 사건을 접으려고 했고 수사는 거기서 막히는 듯 했다. 하지만 홍 지사는 자신의 방에 우연히 찾아온 기자에게 이런 내막을 흘리면서 수사가 오히려 확대됐다.
 
홍 지사는 저서 <홍 검사, 지금 당신 실수하는 거요>에서 "좀도둑은 개인 몫을 훔치지만 고위공직자의 부패는 국가 기강을 무너뜨린다. 검사의 임무는 이러한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끝없이 감시하고 처단해야 하는 데 있다."고 부정부패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강조했다.
 
그런 그가 권력 부정부패의 전형인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 된 것이다.
 
홍 지사는 경남 창녕의 소작농 집안의 2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집이 워낙 가난하다 보니 학창시절 점심시간에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 일쑤였고 대학 때도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 중 고등학교 이상 학교를 다닌 사람은 그 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불우했던 성장과정은 이후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양분이 됐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그는 그렇게 가족들의 기대를 모으며 대구 영남중과 영남고를 나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홍 지사는 검사 시절 상당한 두각을 나타냈지만 평탄치는 않았다. 최근 그를 기억하는 검사나 검사출신 변호사들도 조직에 순응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검사로서는 롱런(long-run)할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1995년 검찰을 나와 변호사가 된 그는 1년 뒤 정계로 들어갔다. '부정 권력의 저승사자'로 국민에게 각인된 그는 이후 정치인으로서도 승승장구 했다. 15대 국회의원으로 시작해 내리 4선을 했다. 2006년에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2011년에는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이 때가 지금까지 그의 인생 중에 가장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무상급식 찬반투표' 논란으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물러나고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에 패한 뒤 당대표에서 물러나면서 주춤하기도 했지만 경남지사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뒤 재선까지 성공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휩싸이면서 그는 벼랑 끝에 서게 됐다. 물론 검찰의 기소와 대법원의 확정판결 까지 그의 결백여부를 지켜봐야겠지만 평생을 들여 쌓아 올린 '모래시계 검사', '쓴소리 바른소리' 잘하는 솔직한 정치인이라는 그의 아성은 자칫 '모래성'이 될 위기를 맞고 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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