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공안통치’의 상징적 인물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명한 것은 ‘성완종 리스트’로 불거진 정권 위기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 인선이 야권이 요구해온 ‘통합형 인사’와 거리가 멀고, 박근혜정부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온 ‘수첩인사’, ‘회전문인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했다는 점에서 인사청문회 과정에 험로가 예상된다.
먼저 이번 인선은 그동안 총리의 덕목으로 요구돼온 국민 대통합, 원활한 국정운영보다는 국정 주도권 확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이번 인선은 박 대통령이 그간 보여왔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성완종 특별검사’로, 야권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명시화 요구에 합의 가이드라인 제시와 조윤선 정무수석비서관 경질로 맞서면서 타협보다는 강공을 택해왔다. 이 같은 점들을 고려하면 ‘황교안 카드’ 역시 ‘힘의 통치’를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크다.
김성우 홍보수석비서관도 이날 발표에서 황 내정자를 부정부패 척결, 정치개혁의 적임자로 평가하며 박 대통령의 국정기조 강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문제는 인준 절차다. 황 내정자는 ‘국정원 댓글사태’ 수사 당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기소를 무마하는 데 개입했다는 이유로 2013년과 2014년 해임건의 대상에 올랐던 당사자다. 지난해에는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의 총책임자로 지목돼 곤혹을 치렀다. 최근에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 발언으로 야권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황 내정자에 대한 인준은 인사청문특별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부터 파열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황 내정자의 경우 이미 한 차례 인사청문회를 거쳤다는 점에서 추가 도덕성 논란에 대한 부담은 적다. 하지만 장관 재직 시절 행보와 업무처리 등을 놓고 격론이 예상된다. 특히 이 전 총리의 사례처럼 야권의 반대 표결로 ‘반쪽짜리’ 총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야권은 이번 총리 인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에게 국민통합 의지가 그렇게도 없는 것인지, 또 사람이 그렇게 없는지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박 대통령에게 정말 큰 실망”이라고 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공안 중심의 총리가 들어서면서 이제 통합과 소통의 정치보다 위압과 강압, 공안통치를 통해 국민을 협박하는 불소통, 불통합의 정치(가 우려된다.) (여기)에 대해서 분연히 맞서 국민을 위해 싸우겠다”며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한편 황 내정자는 김용준·정홍원·안대희·문창극·이완구 후보자에 이은 박근혜정부의 여섯 번째 총리 후보자가 됐다. 앞서 김용준·안대희·문창극 전 후보자는 도덕성과 이념편향 논란 끝에 인사청문회에 서보지도 못 하고 낙마했다. 우여곡절 끝에 취임한 이 전 총리도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여 재직 70일 만에 총리직을 사퇴했다.
다만 황 내정자는 이미 한 차례 인사청문회를 치른 데다, 지명 자체가 박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어 중도 낙마 가능성은 낮게 점쳐지고 있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의원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