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형사사건 성공보수약정 위법·무효' 판결을 내린 가운데 기업 등 재계와 대형 로펌간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총수들이 연루된 기업 형사사건의 경우 기업들은 로펌들과 조건을 걸고 성공보수약정을 맺게 되는데 그 금액이 천문학적이다.
비교적 최근 징역형이 확정된 한 대기업 총수 사건의 경우 '집행유예 선고'를 성공조건으로 변호사비용이 총 100억원까지 책정된 것으로 알려져 변호사업계에 큰 화제가 됐다.
이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업에서는 일단 총수가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자금을 로펌에 몰아줘 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형사사건 성공보수금은 특히 대형로펌들로서는 법률자문 못지 않은 돈벌이였다.
대법원에서도 지적한 것과 같이 기업 형사사건의 경우 수사단계와 재판단계로 나뉘어서 성공보수약정이 정해진다.
우선 수사 단계에서는 최악의 상황인 구속기소를 피하는 것을 성공으로 보고 불기소, 약식명령 청구, 불구속 기소 순으로 성공보수금이 정해진다. 재판단계에서는 징역형과 법정구속을 패소로 보고 무죄, 벌금, 집행유예 순으로 성공보수금이 달라진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기업들은 앞으로 이런 약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총수가 최근 형사재판을 받은 적이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총수 구속을 피하거나 구속됐더라도 빼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며 "총력을 다하는 급박한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수준의 수임료가 정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사정을 겪은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총수일가가 상대적으로 자금 부담은 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성공보수를 요구하는 곳도 없지 않다"며 "어쨌든 이번 판결로 성공보수 부담은 덜었다"고 환영했다.
반면 대형 로펌들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변호사와 의뢰인간 계약인 사적자치 영역을 침해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법원이 형사사건 성공보수약정을 민법 103조 위반이라고 하지만 100년 동안 유지 되어 온 데에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다"며 "당사자간 합의로 이뤄지는 사적자치 영역에서의 계약을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규정한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형사사건을 많이 맡아 온 또 다른 대형로펌의 변호사도 "검찰 수사나 형사재판이 국가형벌권을 실현하는 절차이긴 하지만 무리한 검찰 수사나 재판부의 과도한 양형 선고 또한 없지 않다"며 "전력을 다해 이를 방어하고 당사자간 합의에 의해 정한 정당한 대가를 위법·무효라고 본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견 로펌의 한 변호사도 "성공보수제도의 폐해가 있기는 하지만 판, 검사 출신 전관들의 전횡으로 인한 악용사례가 문제"라며 "과도한 성공보수가 문제되는 경우 사법부가 이를 적정한 수준으로 제한해 온 판례를 깨고 성공보수제 자체를 아예 없앤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운 격"이라고 평가했다.
성공보수 폐지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복수의 대기업 관계자와 로펌 변호사들은 성공보수 약정 대신 법률자문 등 사건을 몰아주는 조건을 걸거나 수임계약시 이면계약 등을 통해 실제로 성공보수약정을 유지하는 편법이 동원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성공보수제 폐지로 일반 국민에게 불똥이 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서 오랫동안 법률사무실을 운영해오고 있는 한 중견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판, 검사 출신 전관변호사들은 분명히 타격을 입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순수 변호사들도 의뢰인에게 성공보수금을 떼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건 수임시 이미 성공보수 보다는 착수금에 무게를 많이 두고 있다"며 "이번 판결을 빌미로 착수금이 더 높아져 국민들에게 변호사사무실 문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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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