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고 끝 노사정 합의, 결실 맺을까

모호한 '충분한 협의' 독자추진 명분 될수도
야 "어제 합의로 끝나는 것 아니라 이제 시작"

입력 : 2015-09-14 오후 5:31:22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지난 13일 극적으로 성사됐으나, ‘충분한 협의’라는 단서를 제외하고는 논란이 됐던 정부의 주장들이 대안 없이 수용돼 입법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전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4인 대표자회의를 열어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비롯한 2대 쟁점과 미합의 사안들에 대해 포괄적 합의를 이뤘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요구해왔던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수용하되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조건을 달았다. 구체적으로는 장기적으로 일반해고의 기준과 절차를 법제화하고, 제도가 개선될 때까지 정부 지침으로 근로계약 체결·해지 기준을 제시하기로 합의했다. 또 판례와 판정례를 토대로 취업규칙 변경 요건·절차를 명확히 하고, 이 과정에서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기로 했다.
 
관건은 ‘충분한 협의’의 수준이다. 정부·여당은 올 정기국회 내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협의를 통한 타협’이 불발될 경우 독자추진을 재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노동계에서) ‘더 이상 협의할 게 없다’고 할 정도로 협의하겠다”고 밝혔으나, 그간 정부가 보여준 일방통행식 협상 태도로 노동계의 불신이 높다.
 
지침을 마련하는 과정도 골칫거리다. 당장 야권에서는 일반해고 지침이 부당해고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지침이 불이익 변경 남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전날 서면브리핑에서 “전체 1900만 노동자들에게 적용될 취업규칙 및 근로계약 해지 기준 명확화는 노사와 충분한 협의가 전제됐지만 노사 현장에서 악용될까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가장 큰 변수는 야권의 협조 여부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노사정위는 단서조항으로 ‘정부는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강조하지만 ‘쉬운 해고’ 정부안을 사실상 수용했다”며 “국민의 삶의 안정과 고용의 질을 상향평준화가 아니라 하향평준화하는 합의안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원내대표는 “추가 논의도 불가피하다. 국회에서 입법사항이라는 절차가 남아있다. 어제 잠정합의로 노동시장 구조개편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것”이라며 법안 심사 과정의 험로를 예고했다.
 
대표적인 쟁점 법안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노사정은 공통 실태조사 등을 통한 의견수렴 절차 후 합의 내용을 법안에 반영키로 합의했으나 야권은 두 법안을 ‘비정규직 양산법’으로 규정하고 당론으로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기국회 과정 중 노동개혁 방향에 일부 의제가 추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구체적으로는 비정규직 보호대책, 재벌개혁 방안 등 야권으로부터 ‘낙제점’을 받은 부문들이 노동개혁 합의안과 ‘연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원내대표 역시 “정부·여당은 일반 국민과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고통분담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재벌구제용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법인세 정상화와 재벌대기업의 사내유보금 투자 방안 등 내수경기를 살려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들을 적극 마련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한편 노사정 대화에 불참한 민주노총은 전날 노사정 합의 내용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이 재앙을 승인한 역사상 최악의 야합은 어떠한 정당성도 없으며 결코 ‘대타협’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야합 주범 노동부를 규탄하고 전국 각 사업장 간부들부터 선도 파업에 나설 예정이며, 오는 주말에는 총파업선포 대회를 개최하는 등 노사정위 야합의 실체를 조합원과 국민들에게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노사정이 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에 합의한 가운데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동선진화특별위원회 및 환경노동위원회 당정 협의에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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