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69) 전 국정원장이 비밀 누설 논란이 제기된 자신의 회고록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을 두고 "책 내용들은 비밀도 아니고 이미 공개된 내용들"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수석부장판사 김용대) 심리로 8일 열린 출판물 판매 등 금지 가처분신청 1회 심문기일에 출석한 김 전 원장은 "책으로 쓴 내용 대부분은 공개된 사항이고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는 판단 하에 회고록을 작성했다"며 '비밀 누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전 원장은 회고록 작성 배경에 대해 "국정원장 시절인 2007년 말에 2차 남북정상회담 선언 내용의 해설집으로 책을 써 공개하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원장은 함께 집필하던 국정원 내부 학자 2명과 보안누설죄로 수사를 받게 되면서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출간을 미뤘다.
김 전 원장은 "국정원장에서 퇴직한 후 같이 책을 썼던 학자 2명이 공저에서 빠지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이들이 쓴 내용을 제외하다보니까 책으로 발간하는 데 부적절하다고 느껴 보완할 필요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때마침 당시 남재준(71) 전 국정원장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일반에 공개해 누구든지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를 보완하면서 당시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이재정(71) 전 통일부 장관과 백종천(72) 전 청와대 안보정책실장과 함께 다시 작성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정원은 "국정원장과 대통령과의 대북관계 의사결정 과정이라든지 국가안보 접촉통로 등 상식적으로 대외관계상 국가안보 사안에 대한 결정 사항을 공개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설령 일반인들이 그렇게 추측할 수 있더라도 대외적으로 공표되는 과정들은 비밀에 해당한다"며 김 전 원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국정원은 또 "국가정보원직원법상 비밀이 아니어도 직무와 관련성이 있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회고록 일부 내용 중 비밀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명명백백하게 비밀 누설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정보원직원법 17조는 '직원(퇴직한 사람을 포함한다)이 법령에 따른 증인, 참고인, 감정인 또는 사건 당사자로서 직무상의 비밀에 관한 사항을 증언하거나 진술하려는 경우에는 미리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출석이 예정됐던 이 전 장관과 백 전 실장이 소환장을 송달 받지 못해 법정에 참석할 수 없었던 이유로 심문기일을 한 차례 더 열기로 했다. 다음 심문기일은 이달 16일 오전 11시10분으로 예정했다.
앞서 김 전 원장은 최근 발간한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10·4 남북정상선언'이란 회고록에서 "10·4 남북 정상선언의 최초 안에는 남북 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우리 측 관계기관의 의견수렴 과정에서 삭제됐다"란 표현을 넣었다. 이에 국정원은 김 전 원장의 회고록에 대해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김 전 원장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와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공식수행원이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난 2012년 10월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외통위 국감에서 제기한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공개 회담에서 북방한계선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라는 대화록이 있다는 의혹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정론관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