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현대오일뱅크에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 지분을 매각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한화석유화학, 한화개발 등에게 매각 전 한화에너지가 저지른 군납유류 담합 소송비용 등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5일 현대오일뱅크가 "한화에너지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속여 주식을 매각한데 대한 손해 등을 배상하라"며 김 회장과 한화케미칼 등 관련업체 3곳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주식양수도계약 당시 계약서상 문언과 함께 경제적 위험의 배분과 주식양수도대금의 사후 조정의 필요성은 원고가 피고들이 진술 및 보증한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경우에도 여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계약 당시 계약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는 주식양수도 계약상 양수도 실행일 이후 보증조항 위반사항이 발견되고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면 원고가 그 위반사항을 계약체결 당시 알았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피고들이 원고에게 손해를 배상하기로 하는 합의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가 보증조항과 관련된 담합행위를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 가능성 등을 계약 당시 주식양수도 대금 산정에 반영할 기회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것만으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며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원고가 피고의 책임을 묻는 것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현대오일뱅크는 1999년 8월 인천정유 주주인 김 회장과 한화케미칼(옛 한화석유), 한화호텔앤드리조트(옛 한화개발), 동일석유 등으로부터 한화에너지 발행주식 946만3495주와 한화에너지프라자 발행주식 400만주를 497억원에 매입하고 한화에너지프라자와 합병했다.
당시 주식양수도계약서에서 김 회장 등은 현대오일뱅크에게 계약체결일과 양수도 실행일 이전에 인천정유가 행정법규를 위반했거나 이를 이유로 행정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는 진술과 보증을 했다. 또 이 진술과 보증이 거짓일 경우에는 약속사항 위반으로 500억 내에서 손해를 배상하기로 약정했다.
그러나 인천정유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실시된 군용유류 구매입찰에 참가하면서 다른 정유사와 담합해 낙찰받은 사실이 드러나 과징금 285억여원을 부과 받았다. 국가로부터도 다른 정유사들과 함께 1584억여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다. 이와 함께 벌금 2억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에 현대오일뱅크는 김 회장 등이 주식양수도 계약 당시 이 같은 사실을 속였다며 322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고 1심은 일부 청구를 인정, 벌금 2억원과 소송비용 등 총 8억27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현대오일뱅크도 담합행위에 직접 참여했던 만큼 계약 당시 인천정유의 법위반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신의칙 위반이라고 판단,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에 현대오일뱅크가 상고했다.
대법원.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