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형제의 난' 소송전이 그간 높은 주목도에 견줘 매우 허술하게 첫 스타트를 끊었다. 상법에 어긋난 소송 당사자 지정, 기존 언론 보도내용 수준의 소명자료 제출, 특정되지 않은 열람·등사 대상 등이 그것이다.
28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부장판사 조용현)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이원준 롯데쇼핑 공동대표를 상대로 낸 '회계장부 등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소송 첫 기일에서 "채권자와 채무자측 모두가 소명자료로 제시한 자료들 대부분이 기존의 언론 보도내용"이라며 "언론보도 보다는 실질적인 법리적 판단을 뒷받침할 자료가 앞으로 제시되길 기대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신 총괄회장을 당사자로 하는 소에서 이 공동대표가 채무자측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문제 됐다.
재판부는 "상법규정상 현재 이사의 지위를 가진 자(신 총괄회장)가 몸담고 있는 회사(롯데쇼핑)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에 있어서는 (이 공동대표가 아닌) 감사를 대표자로 해야 된다"며 신격호 대리인측에 '당사자 표시 정정' 검토를 제안했다.
이어 "대표자를 감사로 변경하고, 감사로 표시된 자에게 (이 사건을) 송달한 다음 소송을 진행하면 될 것"이라며 "채무자(이원준)측에서도 감사로부터 다시 수임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날 심문에서 신 총괄회장 부분은 제외됐다.
재판부는 또 소송 진행을 위해 갖춰져야 할 서류가 형식적으로 부실하게 작성됐다고 꼬집었다. 특히 채권자측(신 전 부회장)의 신청취지 관련 제출서류를 지적했다.
재판부는 "채권자가 열람·등사 기간을 30일로 신청했는데, 이렇게 하게 되면 나중에 집행이제한되거나 안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이런 취지, 이런 표현과 관련해서는 새롭게 나온 법리들을 참고해 다시 한번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측이 적어 낸 열람·등사 대상도 문제가 됐다. '본점 또는 서류 보관장소' 등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거나, '회계 프로그램 아이디 및 비밀번호' 등 열람·등사 청구권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 여부가 확실치 않은 부분까지 포함시킨 것 등이다.
재판부는 "다른 사건에서 잘 보기 힘든 신청같다"며 "기본적으로 열람·등사 대상 서류를 롯데쇼핑 자체의 서류라기 보다 롯데쇼핑이 중국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한 별도의 중국 법인 서류로 이해하고 있다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소명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밖에 중국 자회사, 국내 종속회사 등과 같은 표현이 있었으며, 재판부는 이에 대해 "그 의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떤 회사인지 특정돼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서류들이 광범위하게 제시돼 있으니 가급적 특정해달라"고 당부했다.
이같은 부실 준비로 '형제의 난' 소송전은 장기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다음 기일은 12월2일 오후 4시로 잡혔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롯데쇼핑을 상대로 낸 회계장부 등 열람·등사 가처분신청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2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신동빈 회장 법률대리인 김앤장 이혜광(왼쪽) 변호사와 신동주 전 부회장 법률대리인 양헌 김수창 변호사가 각각 법정을 나서고 있다.사진/뉴시스
방글아 기자 geulah.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