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미술품과 지석 등 문화재를 은닉하고 장물을 취득한 혐의(문화재보호법위반 등)로 기소된 사립미술관 관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엄상필)는 29일 서울 종로구 원소동 소재 미술박물관 관장인 권모(73)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2012년 12월경에 경기 성남시 영은사에서 도난당한 영산회상도를 권씨가 사들인 점은 무죄로 판단했다.
영산회상도가 권씨의 손에 들어오기 전인 2004년도에 이미 한 차례 매매가 있었고 이에 따라 영산회상도에 대한 소유권이 발생해 장물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설령 권씨가 이 불화의 도난 가능성을 알았다고 해도 법률적으로 장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권씨의 장물취득 혐의 부분은 무죄라고 밝혔다.
그러나 권씨가 불교박물관을 경영하면서 불교미술품과 지석 등 400점에 가까운 문화재들을박물관 수장고로 등록되지 않은 다른 지역의 창고에 보관해 은닉했다는 점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권씨는 불교 문화재를 주로 전시하는 불교미술박물관을 운영해오면서 문화재의 유지와 보존에 힘써야 하지만 박물관 수장고에 등록되지 않은 곳으로 문화재들을 은닉했으며 대부분의 문화재가 도난당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권씨의 은닉 행위로 사법기관이나 문화재청의 이들 문화재들에 대한 확인 작업을 불가능하게 했을 뿐더러 도난품 관련 공소시효를 완성시켜 절취범들의 처벌도 어렵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씨가 도난품들을 대량 구매한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 사회의 문화재 절도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도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만, 권씨가 은닉했던 지석 중 62점은 감정 결과 문화재로 인정되지 않아 이 부분 혐의는 무죄로 판단됐다.
앞서 권씨는 지난 2009년 10월~2014년 6월까지 경기 성남시 태평동 본인 소유의 빌딩 지하에 정방사에서 도난당한 독성도를 비롯해 불교미술품과 지석 등 400여점을 은닉한 혐의를 받았다. 또 2012년 10월 장물인 것을 알면서도 영산회상도 1점을 2억1000만원에 사들여 취득한 혐의도 있다.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고대 인도 영취산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불화로 1993년 4월 강원 삼척시 영은사에서 도난당했다. 권씨는 조계종 도난백서에 도난품으로 실려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이를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권씨는 2005년 7월 문화재보호법 위반죄로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바 있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