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 국민연금기금 어떻게 운용돼야 하나?

수익률 위주 운용 위험천만, 자산부채관리 상시화·체질화시켜야
기금운용 5원칙 ‘안정성, 유동성, 수익성, 공공성, 독립성’
기금 장기수익률 연 6.3%는 외국 연기금 5%보다 뛰어난 실적
조급증은 금물, 사막에서 낙타가 멀리 가는 것은 천천히 걷기 때문

입력 : 2015-11-02 오후 2:48:15
최근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사퇴했다.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의 연임불가 판단과 그에 따른 정부와의 마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 이시장의 홍 본부장에 대한 연임불가 판단은 기금의 연간 운용수익률 부진이 주요인이었다고 한다. 타당한 이유인지는 여기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러한 기금운용성과 부진에 대해 기금운용본부장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까지이고, 운용수익의 부진에 대한 평가를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가는 한번 따져볼 일이다. 근본적으로는 전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린 재산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신중한 자산운용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을 과연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운용하고 어떤 점에 주안을 두어야 할지를 오성근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분석을 통해 알아본다.[편집자 주]
 
국민연금기금(이하 기금)의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일까? 연금지급불능사태일 것이다. 기금은 자산과 부채의 양면성을 가진다. 머물러 있는 동안은 자산이지만 모두 되돌려주어야 할 부채이기 때문이다. 연금지급불능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지급해야 할 부채를 감안해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러한 관리기법을 자산부채관리라고 한다. 자산부채관리는 기금운용의 대전제로 세계연기금 모두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 기금은 연금지급액보다 보험료납입액이 훨씬 크기 때문에 민감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간격이 좁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 때문이다.
 
기금운용의 지상과제는 장기안정수익을 확보하여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데 두어야 한다. 연금지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함으로써 기금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기금의 ‘징수·운용·지급’이라는 연쇄 고리 전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자산구성을 해나가야 한다. 기금운용의 축을 자산부채관리로 삼아 자산부채관리를 상시화·체질화시켜야 한다. 자산부채관리는 연금지급불능 리스크의 싹을 없애기 위한 근본처방이기 때문이다.
 
기금은 운용원칙으로 ‘안정성, 유동성, 수익성, 공공성, 독립성’을 열거하고 있다. 이는 기금특성을 감안한 원칙들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나무로 치면 안정성은 뿌리, 유동성은 줄기, 수익성은 가지이고, 공공성과 독립성은 나무가 뿌리내리는 토양이라 할 수 있다.
 
기금은 안정성과 유동성이 확보되는 가운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확보해 오랫동안 안정적인 연금지급을 해나가야 하는 기금특징을 고려하면 그 순서가 맞다. 뿌리가 튼실하지 못하면 줄기도 빈약해지고 가지도 마른다. 안정성이 훼손되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최근 몇 년간 기금의 단기수익률 저조현상이 이어지자 수익성을 앞세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수익성추구에 매몰되면 안정성이 흔들릴 확률이 높아지고 유동성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기금은 우수한 단기실적보다 안정적인 장기실적이 훨씬 중요하다. 단기실적을 무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단기실적에 집착하지 말고 보험료징수부터 기금운용을 거쳐 연금지급까지, 기금 출발부터 마지막까지, 종횡을 가로질러 통으로 보고 기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금은 긴 안목의 장기 전략이 중요하지 날마다의 단기 실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금운용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수익성을 앞세워 운용하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나무를 땅에서 뽑아내 거꾸로 세우려는 꼴이라고나 할까.
 
수익성위주 기금운용은 전 국민이 이해당사자인 기금특성상 위험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기금환경에서는 감당해낼 수 없다고 본다. 해외연기금들이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전문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로 감당할만하기 때문이다. 기금을 수익성위주로 공격적으로 운용하다 투자환경이 돌변해 혹 그들처럼 연간 마이너스 30% 가까운 운용실적을 기록하게 되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기금운용에 만용은 금물이다. 자신의 역량도 모르고 덤비다가는 대가를 치르고야 만다. 이길만한 싸움을 해야 한다. 기금운용담당자들은 언제나 기금운용목적에서 한 치도 어긋나서는 안 된다. 원칙과 기본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
 
요즘 부진한 기금운용수익률로 말들이 많지만 사실 초장기간 지속되는 기금으로서는 단기수익률은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장기수익률은 기금이 월등하다. 국민연금기금이 기록한 장기수익률(2000년~2014년, 15년 연평균수익률) 6.3%는 5%대의 해외의 다른 연기금들과 비교하면 뛰어난 실적이다.
 
위험(수익변동성=평균수익률로부터의 표준편차) 또한 기금이 가장 낮다.(해외 10~15%대비 국민연금 3.8%) 요컨대 기금은 오랫동안 매우 안정적으로 탁월한 운용을 했다는 의미다. 500조 원 기금 중 수익금만 200조 원이 넘는다. 장기간 복리효과를 누린 것이 주 요인이다.
 
근년 들어 수익률이 부진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기금포트폴리오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채권의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추세를 기록해온데다 기금규모의 급속한 팽창으로 인한 희석효과가 겹친 탓이다. 둘째는 포트폴리오 조정에 따른 위험자산 증가속도와 시장상황이 엇갈린 때문이다.
 
기금은 이미 10여 년 전에 장기수익률 저하추세를 예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필자가 재직 중이던 2006년부터 시작해 지금도 진행 중인 포트폴리오 재편작업이 그것이다. 재편의 초점은 점진적인 국내외 위험자산의 투자확대로, 완성에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기금은 국내외로 위험자산비중을 서서히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주식투자로 큰 이익을 보려면 적어도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정도는 참고 견뎌야 한다. 주식투자자는 투자기업에 대한 신뢰가 남아있는 한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위험투자의 기본이다. 기금은 기다릴 수 있다.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거대기금의 수익률은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르내리는 주가가 극복돼 수익률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기금의 단기성과를 따지는 것은 기금특성상 잘못된 접근이다. 비용만 늘어나 갈등만 키울 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격도 모두 다른 세계 연기금들과 단기성과로 줄 세우는 것은 아무 실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해를 끼치기 십상이다. 비교는 경쟁을, 경쟁은 위험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비교평가는 자기만의 색깔을 잃게 만든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 독창성을 죽임으로써 새로운 투자가치 창출을 막고 결국 장기안정수익확보를 해친다. 기금운용목적에 배치되는 것이다. 원칙과 기본을 지키며 기금운용목적에 충실한 운용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
 
거대기금의 운용수익률은 전략적 자산배분을 여하히 하느냐에 달려있다. 기금운용성과의 98% 이상이 전략적 자산배분에 달려있다는 것이 세계 연기금들의 과거 통계다. 단기에 사고팔기 어려운 기금규모 때문이다. 어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인지는 명확하다.
 
정확한 자산배분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금운용지배구조를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지배구조문제는 이제 그만 결론을 낼 때도 되었다. 기금가입자보호라는 기금운용목적에 포커스를 맞추면 정답이 무엇인지 드러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지배구조를 택하더라도 기금특성에 맞는 운용 철학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합당한 이론, 그리고 효과적인 실천지침을 수립하여 일관되게 밀고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조직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하는 조직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위대한 조직은 공통의 목적과 공통의 전략아래 오랫동안 집중력을 발휘하고서야 비로소 태어날 수 있다.
 
뛰어난 기금운용조직이 되려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뚜렷한 기금운용목적과 이를 실행할 효율적인 지배구조다. 그러나 아무리 달성할 목적이 뚜렷하고 지배구조가 올바르더라도 목적 실행을 위한 조직역량이 떨어지면 의사결정에 혼선을 불러와 조직이 제 기능을 못하고 와해되고 만다. 또는 기금운용담당자 자신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기금운용목적이야 말할 것도 없이 기금가입자보호이다. 이는 장기안정수익확보를 통한 지속가능성 유지로 담보된다. 지배구조설계가 잘못되면 문제가 야기되고 목적달성에 차질이 생긴다. 지배구조 상하의 전문성이 제대로 확보되어 전문가에 의한 전문가의 통제 및 관리가 가능해져야 한다.
 
원칙이 바로 서면 신뢰가 쌓이고 집중력이 높아져 조직력이 강화된다. 하나로 뭉친 조직에서 열등한 성과가 나올리는 없다. 사막에서 낙타가 멀리 가는 것은 천천히 걷기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열사의 사막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가는 낙타처럼 그렇게 걸어가야 한다. 뛰어난 기금운용조직은 하루아침에 탄생되지 않는다. 항상 원칙과 기본에 충실할 뿐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려고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된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싸움이 아니다.
 
국가미래연구원
 
기금운용본부장 인사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 달 27일 사임했다. 최 이사장이 퇴임식이 열리는 다목적 강당에 들어가는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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