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유소년 스포츠 지도자, 교육보다 공감이 우선

지도자들과 쌓인 마음의 벽, 대화로 풀어내야

입력 : 2015-11-06 오전 6:00:00
8년 전이었다. 아들이 처음 리틀야구를 시작했을 무렵 연습경기를 보며 느꼈던 당혹감이 아직도 선명하다. 상대 팀의 선수가 2루에서 3루로 들어가다 아웃이 됐다. 아웃된 선수는 감독 앞에 불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슬라이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감독은 그 선수를 운동장 한쪽에서 계속 슬라이딩하게 했다. 몇 번 하다가 말겠지 했지만 경기에서 빠진 그 선수의 벌칙성 슬라이딩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한 시간 넘게 계속됐다. 슬라이딩이 수십 차례 반복되자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이 낯선 세계가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경기를 보는 내내 감독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왜 그러는 걸까? 무엇이 지도자들을 저렇게 행동하게끔 만들었을까?"
 
이 질문을 품고 아이들의 훈련과 시합을 오랜 시간 관찰하다 보니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지금 세대의 스포츠 지도자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운동했던 분들이다. 자기 생각을 말할 기회도 없었으며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문화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언제 혼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자기방어를 하는 데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스포츠 지도자들에게 공감이니 대화니 하는 개념들은 먹어보지 못한 음식만큼이나 생소한 세계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만 줄 수 있다.
 
여전히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면 답답하다. 8년 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지도자를 변화의 대상으로 질책하며 다그치기보다 왜 과거의 방식에 머물 수 밖에 없는지, 무엇이 그들에게 그렇게 행동하게 하는지 하나씩 살펴봤으면 한다. 지도자가 선수의 10년 후 미래를 그리며 훈련을 시키더라도 당장 올해 우승을 못 하거나 학부모들이 원하는 학교로 진학을 못 시키면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 없다면 지도자가 제자를 대학에 보낼 방법은 사실상 없다. 선수에게 질문을 던지고 주의 깊게 경청하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누군가가 진정한 호기심을 갖고 들어준 경험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유소년 지도자들은 자기방어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삶의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지도자들에 대해 외국의 코칭 사례 등을 보여주며 이것저것 요구한다면 저항과 도피의 반응만 끌어낼 가능성이 크다. 지도자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내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질문만 맴돌 것이다. 그래서 고양 다이노스의 이도형 코치는 지금 유소년 야구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도자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보다 공감이 우선'이라는 이도형 코치의 의견을 나는 지지한다. 지도자들이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는 마음의 벽, 어린 시절 과도한 통제와 일방적인 훈련문화 속에 쌓인 분노와 좌절감,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직업적 불안감 등은 대화를 통해 조금씩 허물었으면 좋겠다. 지도자들이 자신을 방어할 이유가 사라질 때 그들의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선수를 향하게 될 것이고 지도자로서 품게 되는 질문 또한 "아이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로 바뀌리라 믿는다.
 
최승표 두비그로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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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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