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명이 한 번에 오르내릴 수 있는 골리앗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 전, 조선소에 근무하는 5000여명의 사람들이 걸어서 일터로 가는데만 1시간30분씩 걸렸습니다. 이제는 20분이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중공업 회사들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절약된 근로자 출퇴근 시간은 회사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국가에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던 청년은 엘리베이터 산업에 평생을 바친 중년 신사가 됐다. 국내 유수의 엘리베이터업체들이 해외 기업들에 인수되고 중국산 제품이 다수 유입되는 상황에서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시장 수성과 글로벌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김기영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 사진/중기중앙회
김기영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사진)는 지난 1994년 회사를 설립한 후 대형선박 및 해양플랜트 건조용 초대형 엘리베이터(골리앗 엘리베이터), 비상 구난용 엘리베이터(X-Vator), 신속한 환자이송을 돕는 헬리포트 엘리베이터 등의 수많은 특허를 취득했다. 이는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 원자력발전소, 이란 테헤란공항 등에 설치되는 엘리베이터 수주로 이어지고 있다. 내년 3월부터는 온두라스 내 주요 빌딩들에 송산의 제품들이 설치된다.
김 대표가 엘리베이터에 뜻을 두게 된 것은 고등학교(충남기계공고)를 수석으로 입학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대한 것이 인연이 됐다. 그는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일을 하라'는 박 대통령의 말을 듣고는 그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며 "산업화가 진행되면 빌딩이 늘어나고 엘리베이터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해 수직교통을 전문분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엘리베이터 누적 설치대수는 세계 9위, 신규 설치대수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1983년 29세의 나이로 오티스 엘리베이터의 R&D 이사에 발탁된 김 대표는 11년을 근무한 후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는 송산을 창업했다. 김 대표는 "미국본사에서 한 나라의 사장으로 보낸다는 말을 듣고 정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이었지만 나라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송산엘리베이터는 LG산전(현 LS산전)·동양엘리베이터 등의 해당 사업부가 외국기업에 인수되는 와중에도 기술개발에 매진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과거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의 80%를 국내 업체들이 장악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시장의 80%를 외국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다"며 "값싼 중국산이 시장에 마구 들어오다보니 이용자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중국산 공세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성능 제품으로 대응할 뜻을 밝혔다. 김 대표는 "현재 위치를 GPS로 확인해 엘리베이터 지붕에 실시간 별자리를 보여주는 아치형 엘리베이터 등은 중국 업체들이 개발하지 않는 부분"이라며 "우리의 인프라가 훌륭한 만큼 지속적으로 시장개척에 나설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김 대표는 지난 9월 발의된 '승강기시설안전관리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대해 "승강기 산업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해부터 한국엘리베이터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승강기산업 발전과 함께 엘리베이터협회 건의로 지난 1991년 '승강기 제조 및 관리에 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2009년 안전행정부가 출범하며 업무가 이관되고 해당 법률도 '승강기 시설안전관리법'으로 바뀌면서 관련산업 육성근거가 없어졌다"며 "산업 육성을 위한 새로운 법률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정법안 제안 이유로 승강기 산업의 육성과 발전을 들고 있지만 발의된 법안에는 해당 근거조항이 없다"며 "현재 활동 중인 관련 협회들이 있음에도 별도 단체를 설립하게 되어 동종 산업의 분열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주장했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