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스위스 제네바로 국제농구연맹(FIBA)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보러 갔을 때 일이다. 필자는 대한민국 농구의 가능성을 세계무대에 알려보자는 당찬 포부를 갖고 FIBA 본사가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를 찾았다. 당시 약 20명 남짓한 지원자들이 FIBA에 모여 있었다. 지원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여성 지원자는 본인 혼자였다. 동양인도 마찬가지. 필자를 제외한 모든 지원자는 서양인 남성이었다.
신장도 작은 동양인 여성 지원자의 등장은 그날 시험만큼이나 큰 이슈였다. FIBA는 매년 2회 스위스, 미국, 호주 등에서 공인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실시하고 있으며 농구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 전 세계 수십 명의 지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FIBA 에이전트 중 여성 에이전트는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에이전트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농구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공인 에이전트가 있는 대부분의 종목에서 여성 에이전트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최근 미국에서는 북미프로미식축구(NFL)에서 활동을 시작한 여성 에이전트의 사례가 기사로 보도됐다. 이 기사에서 여성 에이전트들은 여성이라는 편견 등 각종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소개됐다.
이처럼 스포츠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여성 에이전트의 활동은 미비하다. 하물며 아직 스포츠 에이전트에 대한 인식이 확실히 성립되지 않은 우리나라라면 이 현상은 더 심각해진다.
우리나라 스포츠 시장에서 여성 에이전트는 극히 드물다. 그나마 대중화되어 있던 국제축구연맹(FIFA) 에이전트도 최근 에이전트 규정을 중개인 규정으로 변경해 그동안 명목을 유지하던 여성 에이전트는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여성 에이전트가 없는 것이 그리 큰 문제인가?'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편협한 시각이다. 한국 여자 스포츠 스타들의 해외 무대 진출을 위해서는 여성 에이전트의 역할이 커져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여성 에이전트는 FIFA 공인 에이전트이자 O&D 엔터테인먼트 김양희 대표다. 김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에이전트로서 여성이라는 점이) 크게 이익이 됐다는 건 잘 모르겠다. 그래도 선수를 관리하면서 여성 특유의 섬세함, 심리를 읽는 능력 등으로 몸 상태나 컨디션 등을 잘 짚어낸다. 에이전트로서 쌓은 노하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오래 한 남자 에이전트보다 나은 걸 보면 확실히 다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대표의 말처럼 여성 에이전트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 선수들에게 꼭 맞는다. 이는 여성 에이전트들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여성 선수는 여성 에이전트가 담당해야 한다는 공식을 적용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성 선수들을 잘 아는 여성 에이전트가 그들에게 적합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또한 스포츠 무대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더 넓히려는 의미도 있다. 스포츠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면 가장 먼저 선수가 떠오를 것이며 지도자, 심판, 감독관 등등이 있다. 사실 남성의 역할에 한정됐던 분야까지 이제 여성이 뛰어들지 않은 분야는 없다.
그러나 아직 에이전트 분야는 미개척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아마추어 엘리트 선수들은 프로와 실업 무대에 진출하지 못하고 다른 진로를 알아보느라 애를 먹고 있다. 성공한 여성 에이전트들이 길을 열어 놓는다면, 누구보다 종목을 특성을 잘 아는 이들이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고 해외무대에 진출까지 성사시킨다면 한국 여성 스포츠, 그리고 여성 에이전트의 세계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 믿는다.
윤초화 FIFA·FIBA 에이전트, 이디아스포츠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