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남미를 좌파 복지포퓰리즘의 나라로 치부한다. 그러나 최양부 전 주아르헨티나 대사에 따르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불평등이 구조화돼 있는 '1:99'의 국가에서 대의민주주가 정착되면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난한 서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좌우를 떠나 모든 정치인들에게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복지정책 공약은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복지는 돈’이기 때문에 그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국가재정의 주된 수입원인 토지 등 자원 대부분을 소수의 대지주나 권문세가들이 소유하고 있는 남미의 현실에서 복지재정 마련을 위해 기득권층에 소득재분배적 조세부담을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이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그들이 수용가능한 조세부담은 어디까지인가, 또 서민을 위한 복지 지원의 수준과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타협점을 찾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극심한 불평등 사회에서 그러한 타협을 이루지 못할 경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정치경제적·사회적 갈등은 나라경제를 언제라도 파국으로 내몰 수도 있다.
외부 경제 환경이 좋고 정부 재정이 넉넉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경제환경이 어려워지고 기득권 세력의 저항 등으로 정부 재원이 제대로 조달되지 않으면 복지정책도 파국을 면치 못하게 된다. 경제가 휘청거리고 서민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드러난 좌파 정부의 부패와 비리, 도덕적 타락 등은 국민의 공분을 일으켜 남미 좌파정부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집권에 성공한 보수우파정부인 아르헨티나의 마크리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12월14일 농업인 대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대지주등 보수우파 기득권이 열망해온 밀, 옥수수, 쇠고기 등에 15∼20%가량 부과했던 징벌적 성격 수출관세 폐지를 선언했다.
여기에 미 달러화 매입 규제 철폐 등 기득권의 족쇄로 작용했던 환율규제 정책도 폐지하고 외환거래를 전면 자유화했다. 자국의 페소화 가치는 30%이상 급락했지만 막대한 달러자산을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기득권은 환호하고 있다.
우파정부의 급격한 경제정책 우선회가 과연 성공할지 여부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앞으로 어떤 정책을 추진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기업친화적인 정책들 추진으로 인해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의 후퇴가 일어날 경우 좌파정부에 등 돌렸던 민심은 다시 좌선회할 것이고, 노동자와 서민들은 다시 반정부를 외치게 될 것이며, 아르헨티나는 재차 좌우파 간의 갈등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남미 좌파정부들이 곤경에 처하게 된 원인을 방만한 복지정책 확충 때문이라고 쉽게 진단할 수도 있지만 사실 더욱 직접적인 원인은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폭락으로 인한 경제위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추세가 계속되고 남미경제의 큰 손인 중국경제의 회복이 늦어질 경우 남미경제는 우파정부 하에서도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서민들이 좌파정부에 등을 돌린 것은 우파들의 주장처럼 좌파정부의 복지정책을 심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십 수 년 간 좌파정부의 복지정책에 의존하여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들은 우파정부의 복지정책 후퇴로 그들의 삶이 다시 어려워 질 경우 언제라도 반정부를 외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미대륙에 부는 우경화의 바람은 잠시 지나가는 바람에 그치게 되고 좌경화의 물결이 다시 밀려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란 정치의 계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야 간 복지 포퓰리즘 경쟁도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복지 포퓰리즘 논쟁이 건강하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당파적 이념논쟁이 될 경우 나라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남미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좌우파 간의 정치적 갈등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한 아르헨티나가 눈 앞에 어른거린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남미에 부는 정치바람에 대한 바른 성찰이 필요한 때다.
국가미래연구원
최양부 전 주아르헨티나 대사 사진/지역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