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긴급체포 직후 영장없이 압수한 필로폰, 증거 능력 인정"

"영장 없이 위법하게 압수" 원심판결 무죄 부분 파기

입력 : 2016-02-29 오전 6:00:00
마약 밀수 혐의자를 영장 없이 긴급 체포한 직후 확보한 필로폰도 유죄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48)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일부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9년6개월에 추징금 33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검찰수사관이 이씨를 필로폰 밀수의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은 위법하고, 압수한 필로폰은 적법한 임의제출 물건이 아니란 이유로 필로폰과 2차적 증거들은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현행범 체포의 적법 요건, 형사소송법 218조에서 규정한 임의제출물의 압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지난 2009년 8월, 2011년 3월과 4월 필로폰을 밀수입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중 중국으로 도피했다 2014년 6월 필로폰 운반을 위해 다시 밀입국하는 등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출입국관리법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히 이씨는 2011년 8월 중국으로 도피해 생활하다 강제 퇴거 명령을 받자 2013년 10월 인천항으로 입항하는 선박에 신발과 안경을 벗어둬 자살한 것처럼 위장해 다시 중국에서 불법으로 체류했는데 이후 국내로 밀입국했다가 대구 지역 필로폰 밀수 조직원 김모씨로부터 "필로폰 1㎏당 5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중국으로 출국했다.
 
이씨는 2014년 5월 경남 거제시 고현항을 통해 중국에서 가져온 6.1㎏을 밀수입하려 했으나 첩보를 입수한 검찰수사관들에게 적발는데 이 과정에서 이씨를 조사하던 검찰수사관이 필로폰을 둔 장소를 물었지만 이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을 수색하던 다른 검찰수사관이 필로폰을 찾았고 이씨는 현장에서 필로폰 밀수입과 밀입국 등의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시 검찰수사관은 발견된 필로폰을 이씨에게 제시하면서 "필로폰을 임의제출하면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고, 압수되면 임의로 돌려받지 못한다. 임의제출하지 않으면 영장을 발부받아서 압수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필로폰을 임의로 제출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고, 이씨로부터 승낙을 받아 필로폰을 압수했다.
 
1심 재판부는 그러나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일부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9년6개월에 추징금 3370만원을 선고하고, 2014년 필로폰 6.1㎏을 밀수입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압수된 필로폰은 임의제출물이 아니라 영장 없이 위법하게 압수된 것"이라며 "따라서 이를 기초로 한 2차 증거인 압수된 휴대폰, 압수조서 등은 그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정도에 해당하므로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2심 재판부도 "수사기관이 현행범 체포 후 바지선 내부를 수색해 필로폰을 압수했고, 필로폰이 이씨가 숨어 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발견됐거나 자진해서 장소를 알려준 것도 아니다"라며 "비록 수사기관이 이미 제압당한 상태였던 이씨에게 의사가 있는지를 물은 후 이를 제출받는 형식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임의제출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해 1심판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씨가 바지선에 승선해 밀입국하면서 필로폰을 밀수입하는 범행을 실행 중이거나 실행한 직후에 검찰수사관이 바지선 내 이씨를 발견한 장소 근처에서 필로폰이 발견되자 곧바로 체포하였으므로 이는 현행범 체포로서 적법하다"며 이를 뒤집었다.
 
재판부는 "검찰수사관이 필로폰을 압수하기 전에 이씨에게 임의제출의 의미·효과 등에 관해 고지했던 점, 필로폰을 임의로 제출받기 위해 이씨를 기망하거나 협박했다고 볼 아무런 사정이 없는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은 필로폰의 소지인으로서 임의로 제출한 것이기 때문에 필로폰의 압수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행범 체포 시점 선후와 관련해 이번 사안은 동시성이 인정될 수 있는 데다가 출입국관리법위반으로의 현행범 체포로 봐도 적법하다고 볼 수 있다"며 "체포 과정에서 피고인 자신이 순전히 '임의제출'한 사정을 인정할 수 있어 증거 능력 인정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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