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외국인 투자, 누구를 위한 투자인가

설비투자는 '미비', 투기자본 놀이터…"투자 아닌 채무로 봐야"

입력 : 2016-03-02 오전 7:00:00
외국인 투자 확대와 그에 따른 경제활성화 기대감이 커질수록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1997년 외환위기(IMF)를 기점으로 론스타와 홈플러스 등 수차례 '먹튀'를 경험한 학습효과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외국인 투자 확대에 눈이 멀어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우려한다. 규제 완화 등은 재벌 일변도의 정책 기조와 일맥상통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를 매듭지으려 했던 삼성그룹은 복병을 만나 진땀을 뺐다. 합병에 제동을 건 이는 외국계 투자사인 '엘리엇'이었다. 당시 엘리엇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7.12%로, 삼성의 삼성물산 지분 13.98%(삼성SDI 7.39%, 삼성화재 4.79%, 이건희 회장 1.41%, 삼성복지·문화재단 0.23%, 삼성생명 0.16%)에 크게 못 미쳤다. 그러나 엘리엇은 자기 지분을 포함해 일성신약, 캐나다 연기금, 메이슨캐피털 등 우군을 규합, 우호지분을 11.62%까지 늘리고 합병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비록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의 합병저지 시도는 무산됐지만 외국 자본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된 순간이기도 했다.
 
외국인 투자 확대에 대한 부작용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 극동건설과 외환은행을 인수했던 론스타를 비롯해 같은 해 SK그룹 경영권 침해 논란을 일으킨 소버린, 2006년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의 KT&G 지분 매입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홈플러스 매각과정에서 비밀 매각과 먹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투자 확대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부작용에는 경계의 목소리를 낸다. 김성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해외에 투자하고 있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 자본도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는 측면이 많다"면서도 "극단적인 경우지만 외국 자본이 빠르게 지분을 털고 나가거나, 직접투자 중 하나인 그린필드형 투자를 통해 국내 생산시설을 외국 자본이 다수 점유해 국부유출 정도가 심해지면 내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주체는 정부라는 데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경영권 침해와 먹튀 논란을 일으키는 일부 투기자본을 포함해 외국 자본이 사상 최대 규모로 국내에 유입됐지만 낙수효과는커녕 시장에서 '사자'와 '팔자'만 반복하며 외국인 지배력이 커진 것은 정부의 외국인 투자정책이 실패했다는 단적인 증거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명목으로 외국인 투자 촉진만 외치면서 각종 장벽도 허물고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는 외국인 투자자가 3000만달러 이상의 제조업 공장을 설립할 경우 법인세를 5년간 100%, 그후 2년간 50% 감면하고, 관세는 5년간 100% 낮추는 파격적인 조치가 들어 있다. 우리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낳았다. 그럼에도 박근혜정부 들어 8개 경제자유구역에서 1000만달러 이상의 대규모 신규 투자는 단 1건(인천경제자유구역)에 불과했고, 고용효과는 100여명에 그쳤다.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인세 인하가 외국인 투자 확대로 이어진다는 실질적인 근거가 없다"며 "정부가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재벌에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아일랜드는 법인세 인하로 외국 자본을 많이 유치했다고 하지만, 뜯어보면 설비투자보다는 조세 혜택을 위한 단순 법인 설립이 많았다"고 말했다.
 
재벌 대기업이 당장의 수익만 보고 외국인 투자정책에 동조하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2014년 1월 외국인투자촉진법을 개정,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계열사의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게 했던 공정거래법을 완화했다. 당시 정부는 손자회사가 외국계 투자자와 공동 출자해 합작법인을 세우면 투자가 촉진될 것이라며, 야당의 반대에도 재계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나 일본 JX에너지와 합작공장을 세운 SK의 상시고용은 50명뿐이며, 일본 쇼와셀과 합작공장을 짓겠다던 GS그룹은 업황 악화 등을 핑계로 4년째 투자를 미루고 있다.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법률이 오히려 재벌 특혜로만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외국 투자자본은 바보가 아니다"며 "우리나라에 투자해 환차익 등으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해서 들어오는 건데, 우리나라는 무조건 환영만 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투기자본은 들어왔다가 나가기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준다"며 "'투자'보다는 '채무'의 성격이 짙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 정책이 지엽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외국인 투자 확대를 위해 조세 감면까지 내놨지만 신통치 않은 것은, 근본적으로 폭등하는 국가부채와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산업 역량,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등 허약해진 국가경제 체질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결국 국내 제조산업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뜨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금융권에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을 낳았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다고 경제자유구역 설정을 남발하고 각종 어거지 정책을 내놨다"며 "우리나라는 배후시장이 크지 않다 보니 결과적으로 투자가 금융권 등 일부에 쏠리고 말았다"고 말했다.
 
◇2014년 1월1일 제321회 국회 본회의에서 '외국인투자촉진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사진/뉴시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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