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지하기자] #A(60)씨에게 지난 2010년 5월은 몸서리치는 기억이다. 낯선 사내들이 갑자기 찾아와 자신의 두 손을 도복 끈으로 묶더니 강제로 구급차에 태워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 3층에서 뛰어내려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이혼 협의 중에 있던 아내가 시어머니를 꼬드겨 자신도 모르게 일을 벌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A씨는 정신과 전문의의 대면 진단을 받은 적도 없이 강제입원 됐다.
#B(89·여)씨는 2014년 10월 단 하루 동안 3번이나 강제입원 시도를 당했다. 그녀가 완강히 저항해 이를 피할 수 있었지만 전치 2주의 타박상을 입었다. 남편이 남긴 유산 상속문제로 아들과 갈등을 빚던 와중에 발생한 일이었다. B씨의 아들과 손자는 그녀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처럼 의사에게 말해 입원 의견을 받아냈다. 그러나 의사가 B씨를 직접 진단해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인권침해 논란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정신병원 강제입원'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를 직접 진료하기 전에 이뤄진 강제입원은 보호자 동의를 받았더라도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정재우 판사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된 이모(39)씨가 청구한 인신보호 사건에서 이씨의 수용을 즉시 해제할 것을 결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1월 부모 동의 아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병원행을 거부하며 저항했지만 응급업체 직원들에게 결박당한 채 끌려갔다.
현행 정신보건법 24조 1항과 2항은 보호자 2인의 동의(보호자가 1인인 경우엔 1인의 동의)가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 등을 판단한 경우에 한해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씨가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에 의사에게 직접 진찰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이씨의 강제입원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신보건법상 보호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전문의가 환자를 직접 진찰해 입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한 다음에야 강제입원이 가능하다"며 "응급업체 직원이 이씨를 결박해 병원으로 이송한 행위는 아직 의사의 대면 진찰 및 진단이 있기 전이었다"고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응급업체 등을 통해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병원에 이송시키는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보호자 동의만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정신보건법 24조의 위헌성을 심리하고 있다.
강제입원 제도는 그동안 인권침해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정신보건법 요건만 갖추면 정신질환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최대 6개월까지 입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7월 "강제입원 제도는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에 반하고 정신질환자들의 자기 결정권과 신체의 자유를 제한해 헌법에도 위반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최근 5년간 접수된 정신보건 시설의 인권침해 진정사건은 1만여건이다. 같은 기간 접수된 전체 진정사건의 18.5%에 이른다. 또 정신보건 시설 수용자 8만여명 중 73%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입원된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7명이 강제로 입원된 셈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정신보건법 일부 조항이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직·간접적으로 제한한다"며 "본래 입법 목적 자체의 정당성을 인정하더라도 악용될 우려가 크다"며 자녀들의 의해 강제입원 당한 박모(58·여)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 2014년 6월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했다. 헌재는 다음 달 14일 오후 2시에 공개변론을 열 계획이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