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조직선거의 뒷전으로 밀린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입력 : 2016-04-04 오전 6:00:00
2006년 5·31 지방선거 이후 확산된 매니페스토 선거가 최근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여러 지역에서 거대정당 후보의 ‘정책토론회 불참’, ‘정책평가 거부’가 나타나고 있다. ‘정책토론회 불참’ 통고는 부득이한 사유보다는 자신의 자질과 정책이 공개되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꼼수인 경우가 많다.
 
이는 면밀한 정책검증 없이 시민의 무관심 속에 조직을 이용해 ‘쉬운 당선’을 하려는 구태의연한 선거전략의 소산이기도 하다. 정책토론회 거부는 새 정치, 새 인물의 제도권 진입을 막으려는 거대 정당 후보 간의 적대적 공존과 담합의 성격을 가진다.
 
지역공동체의 비전과 목표, 이를 실현할 정책을 비교 평가하고 검증하는 기회의 무산은 정당정치, 민주주의의 퇴행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선거는 유권자가 묻고 후보자가 답하는 시험이다. 자기 말만 하는 선거는 후진적이다. 선진적인 정치는 유세차량의 로고송보다 후보자가 반드시 입법화 또는 실천하겠다고 약속인 매니페스토 선거일 때 가능하다.
 
매니페스토 선거의 일환인 후보자 초청 정책토론회는 유권자에게 정책으로 후보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정책 본위의 선거, 시민선택형 정치발전에 기여한다.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는 ‘정책’을 선거의 중심에 둠으로써 거대 정당에 가려진 소수정당과 정치신인의 정치권 진입을 돕거나, 정책 외적 요인으로 형성된 후보들의 지지율 등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매니페스토는 정책에 수치를 표시함으로써 허황한 내용이나 정치적 수사의 남발을 막아내고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준다. 후보자 선택과 정책 선택이 분리된 한국 정치에서 매니페스토 선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렇게 다양하다.
 
이번 4.13 총선이 ‘정책 없는 선거’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거대 정당의 '깜깜이 공천'이다. 여야 정당의 공천과정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도덕성, 정체성, 정책이 아닌 특정 세력의 세 확장을 위한 공천, 늦은 선거구 확정과 복잡한 당 내 문제로 인한 급조된 공천이었다.
 
하지만 그 책임이 정치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묻지마’식 투표가 정치권의 한심한 행태를 지속시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지연, 혈연, 학연 등 연고와 정당선호도를 기반으로 한 선택(투표)이 계속되는 한 정당정치와 선거문화 혁신은 불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정책실종 선거는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의원 선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공염불 남발, 정치 후진성 심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선거는 시민 위에 군림하는 사자를 옹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소통하고 약속을 지키는 일꾼을 선택하는 민주주의 과정이다. 유권자의 엄정한 평가를 받을 의무를 갖는 공당의 후보자가 정책 토론회에 일방적으로 불참하는 것은 유권자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는 기만행위라 할 수 있다.
 
토론회 불참으로 정책선거를 회피하고자하는 후보자는 유권자와의 공식적인 계약행위를 위반한 것이므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말 바꾸기를 일삼는 후진적인 정치행태가 반복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의 몫이 될 것이다. 후보자들의 정정당당한 정책대결, 유권자의 정책기반 투표가 전제될 때, 선거는 비로소 민주주의의 꽃이 될 수 있다.
 
여야 정당 모두 유권자와의 소통하는 선거문화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 현장인 지역구에서는 낡은 정치, 구태정치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여야 모두 성숙한 민주주의, 신뢰공동체 회복, 축제처럼 즐기는 선거 문화 정착을 위해 매니페스토 정책선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권자 또한 이제부터라도 정당이나 지역이 아닌 정책을 비교, 평가해서 깐깐하게 후보자를 선택해야만 한다. 제대로 된 정책을 제시하고 혁신하는 정당과 후보만이 지지를 받는다는 ‘상식’이 제대로 자리 잡을 때 한국정치의 경쟁 규칙도 변화될 수 있다.
 
이창언(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평가위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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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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