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타석, 공 한 개만"…빅리그 한 경기의 의미

최지만·김현수, 치열한 생존 게임…데뷔조차 힘든 메이저서 고군분투 중

입력 : 2016-04-10 오후 12:56:04
[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올 시즌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역대 최다인 8명까지 가능하다. '빅리거 풍년'을 보고 있노라면 언뜻 메이저리그가 쉽게 느껴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굳이 눈물 젖은 빵의 대명사로 불리는 마이너리그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코리안 빅리거 일원인 최지만(LA 에인절스)과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데뷔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김현수는 10일(한국시간)까지 팀이 치른 4경기 가운데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라는 팀과 대립각을 세운 끝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메이저리그에 잔류했지만, 좌익수 경쟁자인 조이 리카드가 이 기간 타율 4할 6푼 7리(15타수 7안타) 1홈런 2타점 맹타를 휘두르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 했다.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이 출전 기회를 주겠다고 한 만큼 김현수가 곧 데뷔전을 치를 것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2년간 700만달러(약 81억원)의 조건에 당당히 빅리그에 입성한 걸 생각하면 초라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타율 1할 7푼 8리(45타수 8안타)에 그친 부진은 그가 10년간 국내 통산 타율 3할 1푼 8리 142홈런 771타점을 기록한 교타자라는 걸 한순간에 잊게 했다. 김현수는 최근 성적이 곧 경쟁력인 빅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또 다른 한국인 빅리거 타자인 최지만도 지난 6일 시카고 컵스전에 대수비로 나서며 '빅리그 1경기'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했다. 이날은 그의 첫 빅리그 데뷔전이었다. 이후 최지만은 지난 8일 '선배' 추신수의 소속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전에 대타로 나서며 첫 타석 기회를 얻은 데 이어 9일엔 첫 선발 출전의 기쁨을 누렸다.
 
10일 기준 최지만의 빅리그 기록은 3경기 4타수 무안타 1볼넷이 전부다. 여전히 팀 내 3순위 1루수로 주전들의 체력 안배가 필요할 때 경기에 나서는 처지다. 보이는 것만 보면 보잘것없는 신분이지만 지금 이 자리는 그가 2009년 혈혈단신 빅리거를 꿈꾸며 미국으로 향한 지 무려 8년 만에 따낸 값진 '훈장'이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25인 로스터에 들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인데 이를 극복했다.
 
1990년대 박찬호와 김병현(KIA 타이거즈)의 메이저리그 성공 이후 수많은 유망주가 제2의 박찬호, 김병현을 꿈꾸며 빅리그에 도전했다. 이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금방 다가올 줄 알았던 빅리그 대신 치열한 생존 게임이 벌어지는 마이너리그 생활이었다. 대부분 경쟁에서 도태된 채 마이너리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정상급 메이저리거로 성장한 건 추신수 정도다.
 
2010년대 들어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미국에 도전한 류현진(LA 다저스)의 활약 이후 한국인 메이저리그 도전 유형은 아마추어에서 프로 선수로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히 메이저리그 벽은 높다. 국내 야구 정상급 투수로 통했던 윤석민(KIA 타이거즈)은 지난해 빅리그 데뷔도 못 하고 볼티모어 마이너리그 생활을 청산한 채 국내로 돌아왔다.
 
1999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던 송승준(롯데 자이언츠)은 8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뛰며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빅리그 승격을 앞두고 번번이 눈앞에서 좌절했던 송승준은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공 한 개만 던져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절실하게 빅리그행 의지를 내비쳤다. 실력 외 변수를 인정하지 않는 메이저리그의 냉정한 현실 앞에 꿈을 접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만큼 빅리그는 한 타석, 공 한 개만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곳이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최지만이 지난 3일 열린 LA 다저스와 시범경기에서 8회 솔로 홈런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광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