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
2011년 초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안한 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를 두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말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제시한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에 경영목표치를 넘어선 이익이 발생했을 경우, 기여도 등을 평가하여 대기업에 협력하는 중소기업들에게 초과이익(초과이윤)의 일부를 매년 나누어 주는 제도다. 이후 시장경제와 맞지 않는다는 근거로 결국 흐지부지 되었던 논의는 작년 KSS해운에서 “임직원 이익공유제”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상했다. 그러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제도다. 당시 주주제안으로 이 제도를 주주총회에서 통과시킨 KSS해운 설립자인 박종규 고문으로부터 기업 내 이익공유 방식과 지속가능한 경영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진행됐다.
- 임직원 이익공유제의 정확한 개념과 취지가 궁금하다.
▲2013년까지 KSS해운은 직원들에게 한 번에 100%씩, 1년에 6차례 총 600%의 상여금을 지급했다. 2015년 이익공유제를 도입하여 기존의 상여금 600%중 400%를 기본급으로 전환해 통상임금화하고, 나머지 200%에 이익연동의 규정을 만들어 매년 회사의 순이익금에 비례하여 배당금액을 달리하는 제도이다. 2014년 결산부터 반영하였다.
1998년부터 17년을 빠짐없이 주주로서 이익배당을 받으면서 평소 열심히 일해 준 임직원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민 끝에 결정하였다. 당연히 반응이 좋았고 이는 업무성과로도 이어졌다.
- 제도의 운용현황은 어떤가.
▲2014년에는 회사 순이익이 약 200억을 기록해 과거 기준 400%, 현 연동제 기준 300%의 상여금이 지급됐다. 작년에는 약 270억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자연히 상여금도 예년에 비해 올라갔다. 현 연동제 기준 360%로, 총 29억원을 임직원들에게 배당했다. 그리고 작년 3월에는 주주총회에서 이익연동제의 사내규정화를 주주제안 안건에 부쳐 의결하였다. 앞으로 주총 의결이 필요없이 결산이 완료된 시점에서 사장이 집행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이익에 비례해 배당금이 증감한다는 것은 적자일 때 무배당을 의미한다. 직원들의 반대가 크지 않았나.
▲임직원들 입장에서 분명 리스크가 있는 제도이다. 그렇기에 이 제도 도입을 제안할 때 노동조합과 종업원들에게 이익연동 상여금 200%는 적자 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기다렸다. 많은 고민 끝에 임직원들이 합의의사를 전해 왔다. 해상직원을 대표해 해상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합의했고, 노동조합이 없는 육상직원들은 한명 한명이 합의 도장을 찍었다. 전 직원이 주인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사측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어려운 결정을 이뤄낸 것이다. 도입 이후 우리 회사가 아직 적자를 보지 않았지만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더라도 분위기를 잘 이끌어나가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 이익공유제 하에서 기대하는 효과는.
▲회사에 대한 임직원들의 신뢰와 주인의식이 단연 높아진다. 보다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 개개인에게 돌아오는 이익 또한 증가하는 풍토를 만든 것이다. 또 회사가 어려울 때 이익연동 상여금은 자동으로 삭감되어, 임금 감축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인력 감축을 피해갈 수 있는 유연함을 뜻하기도 한다.
- 1969년 창업 이래 리베이트 없는 영업으로 해운업계에서 유명하다. 정도 경영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가.
▲리베이트를 주려면 장부 조작을 해야 한다. 한 번 이루어진 장부 조작이 반복되지 않을 리가 없고, 결국 분식회계로 이어진다. 리베이트는 기업을 혼탁하게 만들고 직원들 간에 불신으로 이어진다. 구성원에게 신뢰를 사지 못하는 회사는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비자금은 기업 내에서 권력이 큰 사람들을 향하기 마련이다. 간부직과 일반 직원들 간의 거리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 또한 큰 우려사항이다. 이런 이유로 운임을 깎아주는 한이 있어도 리베이트는 일절 거부해 왔다.
- KSS해운 27%를 보유한 사내 최대주주임에도 사장 임명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장 선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대주주의 권한 중 으레 사장 임명권이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나이가 80이 넘었는데 어느 날 까딱 가 버리면 믿을 만한 사장을 어떻게 임명할 것인가 싶더라. 자동화의 필요성을 느껴, 2013년 정관을 개정해 주주총회 직선을 통한 CEO 선임체제를 마련하였다. 주주총회에서 사장 직선을 위한 추천회를 신설, 사장 후보를 추천한다. 사외 이사 4명(지금은 5명)과 전임 사장이 당연직으로 추천위원에 포함되고, 창립자가 추천한 사람 1인, 우리사주조합에서 추천한 사람 1인 총 7명으로 구성된다. 7명이 모여서 사장을 추천하는데, 입후보를 안 시킨다. 파벌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추천위원들이 사내외 관계없이 차기 사장을 발굴한다. 현 이대성 사장이 추천위원회 제도로 선임된 첫 사장이다.
- 경영철학으로 경영권 상속 불가를 고수하는 이유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내가 지명하거나 가족에게 승계해서는 안 된다. 비전문가에게 기업을 맡기는 것은 단지 불공정 인사일 뿐이다. 회사에 공헌도가 높은 사람 내지는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전문가가 사장을 해야 한다. 아들들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 영향을 받았는지 경영권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 큰아들은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고, 둘째·셋째 아들은 국내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입을 모아 ‘그건 아버지 회사이지 내 사업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딱 잘라 말한다. 속으로 ‘정신자세가 됐구먼’ 이라고 생각한다.
- 1995년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물려준 이후에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 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굴하지 않고 좇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투명 사회 구현을 평생의 과업으로 실천하고 있다. 리베이트가 주는 폐해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경영에도 맞닿아 있다. 모든 거래에서 특정 비율만큼의 리베이트가 거래 금액에서 빠지면 장부상의 가짜 비용이 생기게 된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이 정확하지 않게 산정되는 문제를 낳는다. 비자금이나 리베이트가 사라지면 가짜 비용처리가 사라지면서 GDP도 자연스레 성장하게 된다.
투명 사회를 구현하는 것은 특정인이 몰래 먹어왔던 것이 회사의 이익, 국가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체하는 어려운 일인지라 세력을 만들어 장기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중이다.
박종유 KSS해운 고문.
이익공유제란?
공유물의 종류라는 기준에서 성과공유제와 구별된다. 이익공유제가 기업의 이익 중 일정부분을 떼어서 협력업체(또는 자사 임직원)와 나누는 개념이라면, 성과공유제는 기술개발 성과를 협력업체와 배분하는 가운데 순이익 외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가진다.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R&D를 진행하는 등 상호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에 주목한다. 이익공유제에서 거론되는 공유물은 판매수입, 순이익, 이익목표초과분 등이 있다.
한편 ‘공유대상’에 따라 이익공유제는 다시 대기업-협력업체 간 이익공유제도와 임직원 공유제도로 나뉜다. 전자는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기여도에 따른 이익을 나눠주는 제도이다. 2011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로 제안했을 때 협력업체의 기여도 측정 문제와 대기업의 이익목표액이 과대 책정되는 문제 등으로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후자는 기업의 이윤 중 일부를 임직원과 공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가 공약으로 내놓은 ‘공유자본주의’와 통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