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한효주는 제몫을 다하는 배우다. 맑고 청초한 외모의 장점을 십분 살려 '멜로의 여왕'이란 칭호를 얻기도 했다.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관객들로부터 신뢰를 쌓아온 그다.
그런 한효주가 신작 '해어화'에서 자신의 저력을 새삼 일깨운다. 작품 속 예쁜 모습으로 사랑받아왔던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배신을 당하고 악랄한 표정을 짓는다. 때로는 광기까지 드러낸다.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인데, 매우 자연스럽게 펼쳐놓는다. '해어화'는 1987년생 서른 살인 한효주의 성장세가 뚜렷하게 보이는 영화다.
점점 더 진화하고 있는 한효주를 지난 11일 삼청동 소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개봉을 앞두고 연이은 인터뷰 탓에 지칠 만도 한데, 한효주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전보다 농담도 더 늘었고, 쾌활해보였다. 더 밝아진 것 같은데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니 한효주는 "서른 살이 다가오면서 20대에 너무 어른스럽게만 행동하려 했던 점이 아쉬워 변화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효주. 사진/BH엔터테인먼트
"20대에 못했던 감정표현 이제는 아쉬워"
2003년 10대의 나이에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에 나간 뒤 2005년 동국대학교 연극학과에 입학한 한효주는 이듬해인 2006년부터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으로 본격적인 연기활동에 돌입한다. 스무살의 나이부터 연기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매년 수 많은 작품에서 쉬지 않고 활동을 거듭했다. 2010년에는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던 MBC '동이'를 통해 MBC연기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는 '감시자들'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연기자로서 성장하길 갈망하다보니 오히려 인간 한효주의 감정은 표출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속마음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잘해야된다는 생각만 앞서니까 무의식 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거 같아요. 너무 책임감을 따진 거 같아요. 20대 마지막쯤 되니까 아쉽더라고요.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 때 사람들 앞에서 투정도 부려보고 어리광도 부리고, 울어도 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더 늦기 전에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러다보니까 더 웃고 활발해지는 거 같아요."
그런 성격적인 변화는 예능출연까지도 이어졌다. 인터뷰를 하기 전날인 10일 KBS2 '1박2일'에서는 깜짝 등장한 그의 방송분이 화제를 모았다. 유호진 PD와 짜고 멤버들을 완벽히 속인 몰래카메라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예상보다 훨씬 큰 반응에 한효주도 얼떨떨해 하고 있었다.
"처음에 몰래카메라를 하라고 하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멤버들을 속여야 하는데, 전 그런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막상 하다보니까 재미도 있었고, 저도 모르게 설정을 하고 있더라고요.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떨렸는데, 좋은 반응이 나와서 기뻐하고 있어요."
한효주는 촬영을 하며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멤버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앞서 '1박2일'에서는 많은 멤버들이 한효주를 이상형으로 말하며 호감을 표시해왔고, 그런 점에서 한효주 역시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1박2일'에서 저를 예쁘게 봐주셨던 거 같아서 출연했는데, 그렇게 힘들게 촬영을 할 줄은 몰랐어요. 멤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하루만 촬영했는데도 힘들었는데, 매주 촬영하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한효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해어화'는 후회없는 도전"
'뷰티 인사이드' 때까지만 해도 사랑받는 여인이기만 했던 한효주는 신작 '해어화'의 소율을 통해 사랑에 배신을 당하는 여인으로 탈바꿈한다. 사랑과 우정을 송두리째 배신 당한 실망감에서 나오는 처절한 보복과 그 사이에서 충돌하는 연민, 갑작스럽게 튀오나오는 광기, 예측 밖의 노인분장까지 한효주의 변신은 눈부시다. 성숙한 연기를 바탕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최선을 다했어요.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미지 변신까지는 계획하지 않았어요. 그저 연기적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극적인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는데 의도대로 된 거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워요. 연기적인 갈증이 있었는데, '해어화'를 통해 해소한 거 같아요."
'해어화'는 한효주에게 있어 도전과 변신의 작품이다. 극적인 감정표현의 장면도 많으며, 악랄하고 가증스러운 얼굴도 보인다. 사랑받는 여인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된다. 기존의 청순가련형에서 많이 벗어났다.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처절하게 비명을 지른다거나, 감정이 극과 극으로 오고가는 캐릭터를 연기해본 적이 없어요. 상을 받고 싶지는 않지만, 연기 잘한다는 칭찬을 받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캐릭터는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설경구 선배의 말을 듣고 노인분장도 감행했어요. 이번 작품 배우로서 아쉬움은 전혀 없어요."
노래가 중심 소재로 쓰이는 이 영화에서 한효주는 그간 선보이지 않았던 음악적 재능도 뽐낸다. 특히 그가 부르는 정가(가곡)는 매우 듣기 좋다. MBC '복면가왕' 출연을 제안하는 관계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옛날 노래잖아요.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음을 외워가는 과정에서 성취감이 있었어요. 가요보다도 정가를 부를 때 더 편하더라고요."
영화에서 소율은 정가에는 소질이 있으나 당시 가요에는 소질이 없는 캐릭터다. 기본적으로 노래는 잘 하는데 가요에서는 그에 못 미치는 지점을 표현해야한다. 가수 출신도 아닌데, 특정 노래를 조금 못하게 표현하는 게 쉽지 만은 않았을 터다. 그럼에도 한효주는 나름의 전략으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대중가요를 일부러 정가처럼 불렀어요. 기교도 빼고 담백하게 불렀어요. 맛깔나게 부르지 않았어요. 그런 연습을 하다보니까 연희(천우희 분)보다는 가요에 소질이 없는 것처럼 비춰지더라고요. 막상 작품에 나온 모습을 보고는 만족했어요."
한효주. 사진/BH엔터테인먼트
"내가 만약 소율 혹은 연희였다면"
영화 속에서 그는 삼각관계의 한 축을 이룬다. 둘도 없는 친구인 소율과 연희는 천재 작곡가 윤우(유연석 분)를 만나면서 틀어진다. 연희와 윤우 밖에 없었던 소율의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리고 처절한 복수를 감행한다.
실제 한효주가 소율의 입장이었다면, 소율처럼 처절한 복수를 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짧은 답이 돌아왔다. "아마 저였다면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 둘 다 놓친 채 그냥 살아가겠죠. 그런 감정을 주워담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둘도 없는 친구의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연희의 입장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전 그런 면에서 소극적이에요. 아마 제가 무서워서 도망칠 거 같아요. 제가 연희였다면, 소율과 사이가 초반에는 좀 멀어질 거 같아요. 뭔가 마음 한 켠에 묵직한 부담감이 있겠죠.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처음처럼 똑같이 지내지는 못할 거 같아요."
한효주는 '해어화'를 마무리 지은 뒤 MBC 드라마 '더블유'로 시청자와 만난다. 30대 초반의 인물로, 더 밝고 쾌활해진 역할이란다. '해어화'로 만개한 한효주가 또 어떤 얼굴로 나타날지 기대감이 앞선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