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지하기자] A씨는 2012년 1월 B공단의 신설 지부 산업팀 부장에 부임했다. 입사 후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자금지원 담당을 맡은 그는 팀에서 나온 첫 실책이 크게 괴로웠다. 이전 지부에서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 난 그였기에 괴로움은 더했다. 책임자인 그는 깊은 자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그해 3월 내원한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4월 A씨는 절차상 실수로 자금 지원 처리가 약간 늦어졌는데 이 일로 형사 또는 징계 책임을 받을까 불안했다. 퇴근 후 아내에게 "재산이 압류당할 수 있다"고 말하고 "내가 죽는 게 나을까? 감옥 가는 것이 나을까?"라고 묻는 등 우울증은 갈수록 악화됐다.
A씨는 결국 2013년 5월 자신이 사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48세의 나이로 숨졌다. 가족과 함께 처가와 자신의 어머니 집을 방문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귀갓길에 그는 비가 내려도 차량 와이퍼를 작동시키지 않는 등 집중력이 저하돼 보였다. 아내에게 상속 포기 방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다. 그러나 "A씨가 자살에 이른 것은 주로 개인적 취약성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유족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재심사위원회에서도 재심사 청구가 기각되자 이에 불복해 지난해 1월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이진만)는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낯선 업무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에 빠졌고 이후 증세가 악화돼 정상적인 판단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자살했다"며 "A씨의 꼼꼼한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에 일부 영향을 미쳤더라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