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대 총선에서 총 51명의 여성 의원이 탄생했다. 전체 의석의 17%로 역대 최고 성과이다. 19대 총선에서는 47명(15.7%)이 금배지를 달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전국 150여 개 여성단체가 마련한 ‘제20대 총선 여성 국회의원 30% 실현을 위한 여성 공동행동’은 목표치(30%)를 당장 달성한 것은 아니나 이를 의미 있는 결과라고 보았다. 애초 여성 의원의 당선을 높게 점치지 않았으나 의외로 선전했다는 분석이다. 여야 모두 여성을 많이 공천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성할당제와 여성의원 증가
한국 의회에서 여성 의원의 비율은 지속해서 증가했다. 서구에서도 1893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20세기 중반에서야 여성참정권 부여된 반면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제헌의회 출범시 여성의원은 없었고, 1949년 경북 안동 보궐선거에서 임영신이 당선돼 제헌의원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4대 국회에서 3명, 8대 국회에서 5명, 9대 국회에서 17명으로 늘었으나 10대 국회부터 14대 국회에서는 다시 여성 의원의 수가 10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17대 국회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겨 총 39명의 여성 의원이 국회에 진출했다. 이후 18대에서 41명, 19대 47명으로 증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20대 51명의 여성 국회의원을 정당별로 살펴보면 더민주가 24명(19.5%)으로 가장 많다. 새누리당은 15명(12.3%)에 그쳤고, 국민의당 9명(23.7%)이다. 정의당은 6명 중 3명이 여성 당선자다.
20대 지역구 당선인 가운데 여성은 새누리당 6명, 더민주당 17명, 국민의당 2명, 정의당 1명 등 모두 26명이다. 20대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자 가운데 여성은 새누리당 16명, 더민주당 25명, 국민의당 9명, 정의당 6명 등 모두 98명이었다.
이번 총선에서 특히 더민주 여성 후보자의 약진이 두드러진 가운데 추미애(서울 광진을) 당선인은 헌정 사상 최초로 지역구 5선에 오른 여성의원이 됐다. 박영선(구로을), 유승희(성북갑), 김현미(경기 고양정) 당선인 등이 중진 대열에 올랐다. 서울 광진갑의 전혜숙, 강남을의 전현희 당선인은 18대에 이어 재선됐다. 특히 전 당선인은 여당 텃밭인 강남에서 승리하여 주목받았다.
새누리당은 이혜훈(서초 갑) 나경원(동작구을), 이은재(강남구병), 박인숙(송파구갑), 박순자(경기 안산단원을), 김정재(경북 포항북구) 당선인 등 6개 지역구에서 여성 의원을 배출했다. 국민의당은 권은희(광주 광산을) 후보가 당선되며 재선에 성공했다. 권 당선자는 광주와 전남의 여성후보 11명 중 유일한 여성 당선인이다. 정의당은 심상정(경기 고양갑) 대표가 3선 고지에 올랐다. 지역구 당성 여성 의원은 17대 10명, 18대 14명, 19대 19명, 20대 26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역구를 포함한 여성 의원 숫자의 증가 이유로는 2003년에 도입된 여성할당제가 거론된다. 그해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비리 스캔들 이후, 기성 남성 중심의 정치 지형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정치 영역의 남녀불평등에 관한 기존의 인식 말고도 부패한 정치를 바꿀 대안이 여성 정치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그해 11월 비례대표에 여성할당을 50%로 두겠다는 선거법이 통과되었다. 2004년 선거부터 새 선거법이 효력을 발휘했다.
물론 여성 의원의 의회 내 수적 증가가, 여성할당제와 여성정치인 배출이 목표로 하는 최종 지점, 즉 ‘여성인권의 성장과 사회 전반의 성 평등’을 완벽하게 이뤄냈다고는 볼 수 없다. 여성 의원이 단지 초선의원에 그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의정활동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자리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닌지, 비례대표로 의원이 되어 ‘여성’으로서의 역할과 정당에의 충성심이 부딪치며 오는 괴리는 어떻게 극복하는지 등을 모두 살펴야 한다. 게다가 ‘수적 증가’ 자체도 아직 미진한 수준이다.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UN 세계여성회의에선 향후 각국의 의회 내 여성 의원의 비율을 최소한 30%까지 올리도록 했다. 21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17%로 아직 갈 길이 멀다. 국회 내 여성 진출을 통해 사회 전반의 성 불평등 구조가 바뀌는 것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그다음 문제다.
북구의 여성의원 비율은 절반에 근접
여성이 정치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고 평가받는 선진민주주의 국가로는 으레 북유럽 국가가 뽑힌다. 2014년 기준 스웨덴의 여성의원 비율은 45%이며, 핀란드는 42.5%, 노르웨이는 39.6%이다. 여성 친화적인 사회 배경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이 국가들은 한국과는 다른 정치관습을 보여준다. 노르웨이 여성들은 정당 활동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다. 제 정치신념에 맞는 정당을 선택해 지역 의원이 되고, 경력을 쌓아 중앙정치에 진입한다. 그렇다고 여성의원 간 연대가 미진하지도 않다. 여성 관련 의제가 발의될 때면 정당 간 차이보다 양성 간 차이가 더 중요한 것이라 본다. 따라서 정당 간의 시각차로 여성 이슈가 사장되지 않도록 초당적 연대를 이루어낸다. 여성 후보자의 ‘깨끗한 이미지’로 초선의원에 당선되었다가 이내 사라지거나, 당의 눈치를 보느라 여성인권 관련 입법을 이뤄내지 못하는 한국과는 실질적으로 다르다.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은 1994년 이후 국회 내 40% 이상의 의석을 계속 여성에게 내주었다. 당내 집행부 여성 비율 역시 높은 편이다. 이미 1980년대에 50%를 웃도는 경우가 있었다. 여성할당제는 1972년에 채택되었으며 공천을 줄 때도 ‘당선가능권’ 안에 여성을 배치한다. 상징적으로 여성할당의 수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목적하던 바를 이뤄내려 한다. 2016년 현재 스웨덴 정부 내 여성 장관은 12명으로, 총 24명의 구성된 내각의 딱 절반을 채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의 남녀 임금 격차 평균은 15.6%였으나 한국은 36.7%로 꼴찌였다. 남녀차별은 임금 격차에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지난달 8일 여성의 날에 세계 각국은 이날을 축제로 받아들였다. 미국 뉴욕에서는 유엔 여성기구의 주도로 ‘히포시 아츠 위크(HeforShe Arts Week)가 열렸다. 예술을 통해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러시아의 여성의 날은 법정 공휴일이었다. 적어도 이날 여성 주부들은 집안일을 하지 않으며 회사에선 직장 여성들을 위해 전야에 파티를 열어준다. 요르단 강 서안에서는 시위대의 행진이 있었다. 그들은 전쟁으로 인한 가정 해체 문제, 성폭력 문제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마닐라 북부 케손시티에서는 아예 남성들의 ’하이힐 행진‘이 있었다. 한국 여성의 날은 어떠했을까. 행사는 있었으나 오직 여성만이 이를 기렸다. 사회문화적 차이는 분명 정치 영역 내 여성의 위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여성의 날을 기리는 태도에서 드러난 차이는 정치 영역에서의 국가 간 차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책 <여성의 종속>을 통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이 선험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17%’는 19세기 인물 밀의 기대에도 못 미치는 결과임은 분명해 보인다.
1917년 미국 여성운동단체 사일런트 센티널(Silent Sentinels)이 미국 백악관 앞에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상대로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은 뉴질랜드(1893년), 영국(1918년)에 이어 1920년에 세계 세 번째로 인정되었다.
정연지 KSRN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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