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개원했다. 국민들이 4·13 총선을 통해 ‘여대야소’라는 불통과 비생산적인 ‘독주’의 정치지형을 깨고, ‘여소야대’라는 구도에서 소통과 생산적인 ‘협치’의 정치를 해보라는 요구가 담긴 첫날이다. 하지만 개원이라는 단어에 담긴 설렘과 들뜸이 가시기도 전에 27일 에티오피아에서 날아온 대통령의 거부권은 독주보다는 협치가 우세할거라는 세간의 전망을 단번에 꺾어버렸다. 다시 대통령의 독주가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명분은 결국 하나다. 삼권분립 훼손이라는 논리 뒤에 숨어있는 것은 ‘국회가 강해지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미국식 대통령제에서는 볼 수 없는 정부입법, 국회의 입법권마저 무력화시키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그동안 국회를 ‘일하는 국회’가 아닌 ‘정쟁의 국회’를 만든 원인이다. 여당이 청와대와 정부가 기획한 입법을 주도하고, 야당의 비판과 견제를 무시하면 국회는 검투장이 된다. 타협과 조정의 기관이 아니라 정쟁과 장외투쟁의 장이 되는 것이다. 여당은 청와대를 대신해서 야당을 상대로 검투사로 등장한다. 대화가 될 리 만무하다.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해서는 국회가 강해지는 것을 지적할 게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 권한에 대한 비판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원인 진단이 잘못되면 해법도 달리 나오는 법이다. 뇌가 다쳤는데 무릎에 소독약을 바르는 꼴이다.
1987년 헌법체제는 삼권분립의 바탕으로 설계되었지만 여전히 행정부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이 보여주듯 대한민국에서는 절대갑의 위치다. 언론사 국장들을 모아놓고 훈계를 하고, 여당 대표는 직언도, 비판도 할 수 없는 정치 현실에서 대통령은 여전히 ‘총재’다. 비판과 직언, 소통과 견제는 조선시대 왕도 행했던 일이다. 신하들의 숱한 직언과 유림들의 상소, 언간들의 비판을 듣는 게 왕의 일과이기도 했다. 왕은 개인이 아니라 제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비판하고 직언하고 상소하는 대상은 대통령이라는 ‘인격’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제도’이다. 대통령이 언론의 비판과 국회의 견제를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제도의 균형이라는 헌법적 눈으로 봐라봐야지, 배신의 정치를 운운하는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지금의 문제는 ‘일 못하는 국회’가 아니라 ‘일 안하는 대통령’이 핵심이다.
여당도 걱정이다. 대통령 거부권 이후 새누리당의 상황을 보면 야구의 ‘런다운(Run-down)’에 빠진 것 같다. 민심을 따르자니 청와대가 있고, 내부 조정을 하자니 친박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야당을 상대하자면 민심이 있는 홈으로 가야 하는데, 청와대와 친박 때문에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있다. 총선 패배를 극복하고 민심을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타선과 수비진도 교체하고 새로운 작전계획도 수립해야 하는데, 친박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카드로 경기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새로운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익숙한 목소리만 채널을 달리하면서 나오고 있다. 핵심은 청와대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이러니 새누리당 내에서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리가 없다.
20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숱한 민심의 반응을 보고, 들을 것이다. 숱한 비난과 민심의 회초리도 맞을 것이다. 당 내분으로 갈등도 생기고, 전혀 예상 못했던 새로운 정치인이 등장하는 기적도 보게 될 것이다. 민심 또한 많은 변화를 보일 것이다. 각 당은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유권자의 표가 대선에서도 그대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 보여준 분할투표(split vote)의 효과가 어디에 집중될지, 투표율과 세대별 상관성도 꼼꼼히 살펴볼 것이다.
국회는 365일 쉬지 않고 일하고 있어야 한다. 입법과 정책으로 정부나 정당이 채우지 못하는 공간을 국회가 보완하고 채워나가야 한다. 부족한 국가시스템을 다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공간도 국회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가계부채·주거 문제 해결을 비롯해 구조조정과 산업정책도 20대 국회가 부여받은 책임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이다. 당청이 수직구조인지 수평구조인지에 따라 여야 협상은 달라질 것이다. 대통령이 야당을 협치의 파트너로 볼 것인지 여부에 따라 여당의 지위는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20대 국회의 과제는 더민주당-새누리당-국민의당이라는 ‘3당 체제’가 아니라 대통령-여당-야당이라는 ‘삼각구도’를 어떻게 다시 짜느냐다. 결국 문제는 대통령이다.
양대웅 코리아 아이디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