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미국의 대다수의 주에서 ‘인종 간 결혼’은 불법행위였다. 1664년 메릴랜드에서 처음으로 ‘인종 간 결혼 금지법’이 시행된 이래 300여 년 동안 백인과 비백인의 결혼은 법적, 문화적으로 규제되어왔다. 백인과 비백인이 결혼할 경우 징역형을 내리기도 하였으며, 추방 등의 처벌이 이루어졌다.
1958년 리처드 러빙과 밀드레드 러빙 부부는 결혼 5주 만에 경찰에 연행되어야 했다. 리처드 러빙은 25세의 백인 남성, 밀드레드 러빙은 18살의 비백인 여성이다. 이들 부부는 버지니아주의 ‘인종 간 결혼 금지법’에 따라 “연방의 평화와 존엄에 위배하여 남편와 아내로서 동거했다”는 혐의가 인정되어 버지니아주에서 25년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이들은 이후 ‘인종 간 결혼 금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던 워싱턴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들의 추방에 부당함을 느끼고 버지니아 주 법원에 다시 한 번 소송을 제기한다. 버지니아 주법원 판사는 “신은 각각의 인종이 각기 다른 대륙에 살게 하셨다. 이는 인종이 섞이게 할 의도가 없으셨음을 나타낸다.”며 유죄 판결을 유지하였다. 러빙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고, 1967년 연방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러빙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더 러빙 스토리(The Loving Story)> 中. 캡쳐/지속가능 바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들 간의 결혼을 불법으로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국가가 결혼이란 제도를 이용하여 공공연히 차별을 조장해 왔다. 인종을 근거로 결혼제도에서 비백인을 배제시키면 안 된다는 요구가‘신의 의도’로 묵살되었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도 엉뚱한 결혼 금지법이 있었다. ‘동성동본 불혼제도’(민법 제809조)가 그것이다. 해당 법은 촌수와 무관하게 성과 본관이 같은 남성과 여성의 결혼을 금지시킨 법이다. 1997년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효력이 중단되었고 2005년에 이르러서야 폐지되었다. ‘동성동본 불혼제도’가 사회적 타당성과 합리성을 상실하였고, 동성동본이 남계혈족에만 의존하여 계산되기 때문에 차별적이라는 것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신의 뜻이고, 어떤 것이 사회적 합리성을 갖추었는지는 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펴봐야 알 수 있다. “각각의 인종을 다른 대륙에 살게 하”였던 신의 뜻을 “인종이 섞이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한 지도자들의 논리는 그 시대에선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형적인 아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동성동본의 결혼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사실들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주요한 무기로 쓰이고 있다. 논리를 가장한 차별의 면면을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2016년 5월 2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김조광수와 김승환 부부가 서울 서대문구청장을 상대로 낸 '혼인신고 불수리 정정' 신청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서부지법은 각하 이유에 대해 “혼인제도가 다양하게 변천돼 왔지만 남녀의 결합관계라는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김승환 김조광수 부부의 결혼식을 다룬 다큐멘터리 <마이 페어 웨딩(My Fair Wedding)> 中. 캡쳐/지속가능 바람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