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산사태나 축대유실 같은 물난리 사진이나 영상이 보도되고 있지만 연간으로, 한반도 전체로, 그리고 전세계적으론 물 부족과 가뭄이 더 큰 문제이고 더 심각한 문제이다. 1994년 6월 17일 파리에서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이 채택됐는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생물다양성협약(UNCBD)과 더불어 3대 환경협약으로 꼽히는 이 협약의 체결을 기념하는 6월 17일의 정식 기념일 명칭은 ’세계 사막화·가뭄 방지의 날(World Day to Combat Desertification and Drought)’이다.
2008년 세계는 유례없는 곡물값 파동을 겪었다. 2006년 중반부터 오르기 시작한 국제 곡물가는 2008년에 들어서며 연일 급등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자료에 의하면 그해 3월 국제 곡물 가격은 쌀이 톤당 전년도 1월의 318.3달러에서 577달러로, 밀은 208.5달러에서 481.5달러로 올랐다. 2008년의 1차 세계 식량 파동에 이어, 2011년 또다시 곡물값이 상승했다. 2010년 3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약 40% 상승했다. 농업에서의 가격 폭등이 전체 물가를 올린다는 합성어 ‘애그플레이션(Agflation, Agriculture+Inflation)’이 유행하기도 했다.
두 차례의 곡물가 폭등의 공통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상 이후와 가뭄이다. 2006년, 호주는 기록적인 가뭄을 앓았다. 호주의 보리와 밀 수확량은 전년보다 60% 이상 감소했다. 2차 파동에서 역시 2010년 러시아의 극심한 가뭄과 우크라이나의 이상고온이 곡물 공급량을 감소시킨 주원인이었다.
우리나라와 해외의 가뭄
가뭄은 ‘오랜 시간 동안 강수 현상이 없거나 적은 강수가 지속한 현상’(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으로 정의된다. ‘수요에 비한 공급의 부족’이 물 부족이라면 가뭄은 평균 강수량과의 비교치에서 측정된다. 예를 들어 사막에선 일상적으로 물 부족이 심하지만 가뭄이 일어날 때가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다.
대표적인 가뭄지수로 기상학적 가뭄지수인 표준강수지수(SPI)와 수문학적 가뭄지수인 파머가뭄지수(PDSI)가 있다. SPI의 경우 시간 간격에 따라 합산한 강수량이 평년치와 얼마나 적거나 많은지를 계량화한다. 월별 강수량 자료만으로 쉽게 계산할 수 있다. PDSI는 강수량과 증발산량, 온도, 지표 유출 등을 종합하여 토양의 수분 수지를 분석한다. 의미와 용법이 지수에 따라 다르지만, 두 지수 모두 가뭄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 자연 현상의 변동을 이용한다. 물에 대한 수요와 공급 등 사회경제적 지표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80년대 이후 꾸준히 가뭄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의하면 2012년 경기·충남 전북·전남 지역에서 일어난 가뭄은 104년 만에 한반도에 찾아온 가장 큰 가뭄으로 평가받는다. 2013년 경남, 제주도 지역과 2014년 강원·경기·충청 일부 지역에도 역시 가뭄이 발생하면서 한국 전역은 특정 지역을 가릴 것 없이 가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외에서는 큰 규모의 가뭄만을 추적하더라도 2006년 이후 매년 가뭄이 발생했다고 셈할 수 있다. UNESCO의 2009년 자료는 1900년부터 2006년까지 가장 심했던 1,000건의 세계 재해 중 90%가 물과 관련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뭄은 홍수에 이어 빈도수 2위의 재해였다. 2006년 5월 인도를 강타했던 가뭄은 총 53명의 사망자 피해를 냈고, 유럽 전역에서 30℃ 이상의 고온을 기록했던 2006년 7월의 가뭄은 32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2007년 헝가리의 여름 가뭄은 더욱 극심한 피해를 가져왔는데, 41.9℃의 이상 고온을 기록하며 500여 명의 사망자를 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2009년 고온으로 인한 산불을 발생시키며 총 210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호주 남동부의 가뭄과 2013년 ‘5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라 불린 뉴질랜드의 가뭄 등을 세계적 재해로 들 수 있다.
기후 변화와 가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2013년 제5차 평가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세계 기후변화의 현황과 이로 인한 피해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IPCC는 1988년 유엔이 설립한 기구로 195개국의 세계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 정보와 지식을 195개국 정부에 주기적으로 제시한다. IPCC의 5차 보고서에 의하면, 1970년부터 2011년 40여 년간의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이 1750년부터 1970년까지 220년간의 누적 배출량과 비슷하다. 또한 대기 중 온실가스의 농도 변화가 지구 평균 기온과 해수면을 상승시켜 가뭄과 폭염 등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IPCC의 이 5차 보고서는 가뭄 연구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이후 국내외 동향은 가뭄의 원인을 국지적인 강수량 변화에서만 찾지 않는다. 가뭄 연구에 온실가스 농도변화를 반영하는 연구, 가뭄 측정에 있어 증발산량(지면에 대기로 증발하는 수증기량과 식물의 잎에서 대기로 증산되는 수증기량을 합친 것으로 기온에 크게 좌우된다)을 고려하는 표준강수 증발산량지수(SPEI)를 활용하는 연구 등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기와 토지의 질적 변화가 가뭄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SPEI 지수를 활용하여 가뭄 전망을 살핀 국내 연구는 2011~2100년 미래에 극심한 가뭄이 빈번할 것으로 제시한다. 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의 ‘2012년 기후변화 대응 물 안보 위기관리 정책 연구’는 한강 유역에 대한 수문변화 및 시공간적 전망을 예측하였는데, 온실가스 배출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RCP8.5 시나리오에 따를 경우 2011~2100년의 가뭄이 현재(1980~2005년)보다 더 빈번히 발생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후변화 적응정책 틀 안에서의 가뭄정책은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은 2008년 환경청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한 국가 물 프로그램 전략’을 발표한 바가 있다. 미 환경청은 기후변화 적응 · 유역관리 · 국가 오염물질 배출 저감 프로그램 · 물 관련 인프라 등의 항목으로 주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후변화 적응정책의 주요 골자는 환경부 주축의 범정부 프로젝트인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2011년~15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가뭄 피해와 관련된 적응정책은 ‘환경질 감시’, ‘수자원 개발과 이수 및 치수능력 확보’에 불과한 수준이다.
영국 로이즈 보험사는 지난해 서울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뭄에 취약한 도시라고 발표했다. 전 세계 301개의 도시를 대상으로 ‘도시 위험 지수’를 측정한 해당 연구에서 앞으로 10년간 서울이 가뭄으로 인해 입을 피해액을 61억달러(약 7조원)로 예측했다. 서울은 “가뭄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대비가 거의 돼 있지 않다”는 결론이다.
호주 남동부에 위치한 머레이 강 주변이 가뭄으로 말라가고 있다.
정연지 KSR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