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검찰과 운주당

입력 : 2016-07-25 오전 9:02:11
대한민국이 검찰로 온통 시끄럽다. 논란이 되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의혹과 진경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 홍만표 변호사의 구속은 국민들에게 검찰개혁이 왜 아직도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검찰의 0.1%에 해당하는 인사들의 도를 넘는 행태를 보며 국민들은 의혹을 넘어 아직도 대한민국이 이 정도 수준밖에 이르지 못했나에 대한 자괴감에 빠졌다. 심지어는 영화 <내부자들>보다 현실이 영화를 뛰어넘는다고 탄식할 지경이다.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되는 현실은 정상 사회가 아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질문을 하나 던지게 된다. 이러한 비정상이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이토록 허술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토록 후안무치하고 낯부끄러운 행태가 법을 통해 정의를 수호한다는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검찰조직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자문할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명량>이라는 영화가 인기였다. 명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첩 중 하나다.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나왔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대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선조는 원균이 이끈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전멸하자 자신이 내쫓아 백의종군시킨 이순신을 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한다. 당시 조선 수군은 고작 12척의 판옥선이 남아 있었다. 선조는 수군을 포기하고 육상에서 싸우라고 권고하지만, 이순신은 필사즉생(‘나아가 죽기로 싸운다면 해볼 만하옵니다’)이라는 답변을 올린다. 결과는 300척의 일본 수군을 12척의 조선 수군이 대승했다. 이순신의 승리였다. 300척과 12척이라는 비교는 단순히 숫자의 격차가 아니다. 공포, 두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승패도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도저히 싸울 수 없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의 수군은 일본 수군을 대파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이 비정상의 승리는 어떤 이유에서 온 것일까, 정치적 군사적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이순신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난중일기 속의 이순신은 문인에 가까울 정도로 사색적이지만 붓보다는 칼을 가까이한 무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은 칼보다는 붓에 가까울 정도로 열려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운주당’이다. 운주당은 집무실이자 회의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휴게공간이기도 했다. 경직되고 딱딱한 회의가 아니라 부하들과 바둑도 두고 술도 마시면서, 고충과 아이디어를 들으면서 조선 수군의 전략과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걱정했다. 병법을 이야기했고 군사전략을 논했으며 수군의 상황을 공유했다. 부대가 어떻게 돌아가고 백성들의 삶이 어떤지를 온몸으로 들었다. 일반 병사들도 찾아 올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었고 개방된 공간이었다. 이 운주당이 바로 이순신의 리더십이었다.
 
원균은 달랐다. 이순신이 삭탈관직 당하고 백의종군 후 원균은 운주당을 부하들에게 닫았다. 그곳에 첩을 데려와 살았고, 부하들을 멀리했다. 술자리는 첩하고만 나누었고, 군사전략은커녕 부하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그는 군사정보에 어두웠고, 군사전략은 병사들에게 전파되지 않았다. 부하들이 칠천량 수전은 불가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과 대신들이 무서워 조선 수군을 전부 이끌고 바다도 나아갔다.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12척을 남기고 전멸했다.
 
운주당은 현재 검찰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준다. 검찰의 0.1% 민낯을 본 국민들은 검찰이 폐쇄된 조직이 아니라 열려있길 원한다. 법질서의 보루인 검찰이 사회와 민생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으면 진경준과 홍만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된다.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 열어야 한다. 갇혀있지 않고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 검찰은 원균이 아니라 이순신의 운주당으로 변할 수 있는 갈림길에 서있다. 어떤 운주당이 될 것인가. 검찰 스스로의 손에 달려있다.
 
양대웅 코리아 아이디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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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