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서주연기자] 툭하면 떼이기 일쑤인 퇴직금을 보완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퇴직연금이 올12월로 시행 4년째를 맞는다. 그러나 퇴직연금제도는 기대만큼 빠르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장규모도 예상을 한참 밑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과연 퇴직연금은 노후소득보장 강화라는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토마토 TV는 개국7주년 특집 기획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퇴직연금의 현 주소와 전망, 풀어야 할 과제등을 집중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퇴직연금이 도입되기 전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오는 2010년이면 67조원 규모가 될 것이란 관측도 제시될 정도였다.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2010년을 석달 앞둔 지난 9월말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은 이 예측의 7분의 1수준인 9조1047억원에 불과하다.
정부 정책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안되어 있는데다, 초기 정착에 필수적인 정책적 지원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반쪽짜리 제도라는 비아냥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 내년부터는 달라진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퇴직연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전망이다.
내년부터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퇴직급여제도가 의무화되고 퇴직신탁, 퇴직보험 판매가 내년이후 중단되는 제도적 요인이 대기하고 있어서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 통과될 경우 소득공제 혜택이나 중간정산제 요건 강화, 신설사업장의 가입 의무화등이 가능해져 정책적 뒷받침도 가세된다.
덩달아 시장규모도 커지고 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금융기관간 쟁탈전도 치열해 질 게 뻔하다.
미래에셋퇴직연구소는 이런 배경을 이유로 퇴직연금 시장이 앞으로 크게 성장해 오는 2020년 471만명의 가입자에 149조원규모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퇴직연금이 노후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은 무엇보다 현행 퇴직금제도와 노후소득보장체계의 취약성 때문이다.
현행퇴직금 제도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서 1년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 근속연수 1년당 1개월분에 해당하는 임금 상당액을 퇴직할 때 일시금으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들은 퇴직금을 일시금 신탁형태로 사외에 적립하거나 사내에 유보할 수 있는데 대부분 사내적립을 선호하는 편. 이로 인해 근로자들은 다니던 회사가 도산하면 퇴직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퇴직연금은 쉽게 말해 연금형태로 퇴직금을 나눠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퇴직금을 떼이거나 푼돈으로 흐지부지 써버리는 폐단을 방지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등에서 권고하는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다층체계)를 완성하는 의미가 크다. 1층 국민연금이 기본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고, 그 위 2층 퇴직연금과 3층 개인연금이 얹어진다는 개념이다.
다층체계는 노후빈곤이 심각한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더 필요한 시스템.
OECD가 지난 6월 발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09’(Pensions at a glance 2009)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의 노인빈곤율 평균 13.3%에 비해 약 32% 높은 수준으로, ‘최고 빈곤’의 불명예를 차지했다. OECD 회원국 노인 10명 중 평균 1.3명만이 가난하지만, 우리나라 노인은 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4.5명이 가난하다는 의미이다.
은퇴 후 소득이 1인당 월평균 50만8000원에 불과하다는 한국은행의 분석도 있다.
다층체계의 허리부분인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으로 나뉜다.
확정급여형은 근로자가 퇴직후에 받을 연금수준이 사전에 확정돼 있고, 확정기여형은 펀드 운용결과에 따라 연금이 달라진다.
성주호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 국민연금에 대한 대국민 신뢰에 문제가 있었고, 지속적인 국민연금제도 유지에 대한 국가적 부담이 컸던 것이 퇴직연금 도입의 배경”이라며 "노인들이 현금자산을 확보할수 있어, 또다른 실버 산업을 확장 시킬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 `시장을 선점하라`..금융기관 쟁탈전 점화
문형표 KDI 경제정보센터소장은 "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도 2008년 개혁이후 수령액이 크게 줄어 사실상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보장받기란 불가능"이라며 "퇴직연금 가입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은행,보험,증권업계는 이미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쟁탈전에 돌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은 지난해 10월부터 적립금 누적액이 보험업계를 추월했고, 올 하반기(9월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시장의 절반(52.5%)을 넘어서는 점유율을 보였다. 많은 점포와 영업력을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행한 결과다.
보험은 35.0%, 증권은 12.5%의 점유율을 나타냈다.
이명규 국민은행 퇴직연금 팀장은 “그동안 은행이 관심을 갖지 않던 퇴직연금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행한데다, 투자의 안정성과 편리한 접근성을 가진 은행에 대한 고객의 수요가 맞아 떨어진 것" 이라며 은행의 선전 배경을 설명했다.
그동안 퇴직보험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해왔던 보험업계는 그동안 신경쓰지 않았던 중소 영세기업등을 대상으로한 은행들의 마케팅 등이 효과를 거두자 반격을 준비중이다.
저금리 시대 수익률을 앞세운 증권업계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시장점유율이 10%를 조금 넘어서는 증권업계의 경우 높은 연금 운용 수익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고객잡기에 한창이다. 퇴직연금 부문에서 주요 증권사 12곳의 올 1분기 평균 수익률은 2.66%로 생명보험사 13곳은 1.81% 은행 13곳은 1.78%를 기록했다.
강창희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은 “증권사를 통한 퇴직연금 가입의 경우 위험자산을 어느 정도 키운다 해도 안정성이 보험이나 은행보다 떨어지지는 않는다”며 “저금리 시대 노후준비를 위해서는 연금이 최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