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정부가 원격의료 시범사업 대상을 대폭 확대한다.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안전성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원격의료 입법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4일 의료 취약지에 대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및 의료기관 촉탁의(의사)와 요양시설 간호사(의료인)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하반기부터 확대 시행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2014년 4월 만성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환자 안전성 등을 둘러싼 논란 끝에 19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다. 당시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와 야권은 대형병원이 원격의료를 독식해 동네의원들이 도산할 가능성이 높고, 대면진료 축소로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어려워져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 의지는 명확하다. 이미 폐기된 개정안도 지난 6월 20대 국회에 재제출한 상태다.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일본의 경우 1997년 낙도와 산간벽지에 대해 제한적으로 원격의료를 도입했다. 그 대상도 대면진료가 곤란한 만성질환자로서 원격진료로 요양환경이 개선되는 경우였다”며 “그런데 지난해 8월에는 후생성에서 원격의료 지역을 낙도와 산간벽지로 제한할 필요가 없고, 대면진료는 원격의료의 전제가 아니라는 통지문을 내렸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이어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처럼 가자는 건 아니다. 군부대와 원양어선, 교정시설, 요양시설 등 취약지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하자는 것”이라며 “국민 건강 차원에서도 이 부분은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국회와 의료단체를) 열심히 설득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번 시범사업 확대는 크게 세 방향으로 이뤄진다.
먼저 정부는 하반기부터 시범사업 대상기관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도서지역은 신안·진도·보령 등 11곳에서 20곳으로, 격오지 부대는 40곳에서 63곳으로, 원양어선은 6척에서 20척으로, 교정시설은 30곳에서 32곳으로 그 대상을 확대한다. 또 7개 권역 32개 응급실에서 시행 중이던 농어촌 취약지 응급원격협진사업 대상을 지난달부터 11개 권역 74개 응급실로 확대했다.
더불어 정부는 촉탁의 추천·지정제를 도입하고, 노양요양시설의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70인 이상 전 시설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에 따른 사업예산은 1년간 77억원, 사업대상 기관은 70인 이상 요양시설 680여곳 중 의료인(간호사)을 고용하고 있는 450여곳이다.
이 밖에 정부는 의료기관 간 원격의료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8개국(페루, 칠레, 브라질, 중국, 필리핀, 멕시코, 몽골, 르완다) 중 페루, 필리핀, 몽골 등 3개국과 현지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10월부터는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한 원격의료 시범사업도 추진하며, 베트남 등 동남아 3개국 재외국민을 대상으로는 헬스케어센터를 통한 의료상담 및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안전성 우려 등에 대해 권 실장은 1~2차 시범사업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보완한 만큼,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의료계는 1~2차 시범사업 때 제기됐던 문제들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았고, 안전성에 대한 검증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국민이나 시민단체, 야당이 우려하는 사항들에 대해 해결법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자신들이 옳다, 맞다고만 하는 게 지금 정부의 태도”라며 “정부가 안전성 문제가 없다고 내세우는 근거들도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엔 통계적으로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판단은 오직 의사가 하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장비의 화질 문제 등으로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을 때 환자에게 대면진료를 유도해야 하지만, 환자가 의료기관 방문을 거부해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도 의사가 지게 된다”며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은 모든 책임을 의사가 떠안는 구조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1월 20일 경기도 성남 국군의무사령부에서 장병들이 의료종합상황센터 응급의료체계 및 원격의료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