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지난주 대한민국의 눈과 귀를 붙잡았던 이슈가 있었다. 박근혜정부 들어 5번째 내놓은 '가계부채 대책'이다. 내용은 앞선 대책과 마찬가지로 알맹이는 쏙 빠진 채 땜질식 처방에 그친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은 6월말 기준 1257조3000억원이다. 국민 한 사람당 2475만원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정부가 올해 2월부터 가계부채 억제책으로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했지만, 이를 비웃듯 올 2분기에만 33조6000억원의 빚이 늘었다. 상반기 가계부채 증가액은 54조2000억원으로 역대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박근혜정부 3년 반 동안의 가계부채 증가액은 294조원으로, 노무현정부 5년 193조원과 이명박정부 5년 240조원의 증가액을 훌쩍 뛰어넘는다. 현 속도라면 연말까지 가계부채 총액이 130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크다.
가계부채는 양적 팽창 뿐 아니라 질도 나빠지고 있다. 가계부채 가운데 저축은행·새마을금고·단위농협·신용협동조합 같은 비은행 금융회사 대출은 분기 사상 최대인 10조4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정부가 도입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영향으로 은행 대출이 어려워진 데 따른 풍선효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6개월 만에 내놓은 5번째 가계부채 대책의 핵심은 주택물량 공급을 줄여 대출 수요를 잡아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택지공급 감축, 신규 인허가 축소 등을 통해 분양 물량을 조절하고, 밀어내기식 주택 공급을 막기 위해 분양보증예비심사제도 등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주목할 점은 정책 방향이다. 이번 대책은 그간 최경환 경제팀 등이 줄곧 밀어붙였던 '빚 내서 집 사라'는 성장 위주의 부동산 부양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빚 내서 집 사라'고 권했던 정부가 '주택 공급 줄이니 빚 내지 마라'는 식으로 태도를 바꾼 셈이다. 여기에는 대출심사 강화와 원리금 상환 등 금융 규제만으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책 전환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강력한 주택 억제 대책인 분양권 전매제한 강화나 집단대출 규제 등은 그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다는 데 있다. 2년 전 최경환 당시 부총리가 경제사령탑에 취임 직후 곧바로 기준을 완화해 가계대출 물꼬를 터줬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규제하는 방안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다. 간신히 살아난 부동산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까 핵심 대책들은 쏙 빼놓은 것이다. 이는 중산층 이상의 표심에도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미련을 못 버리는 정부가 내놓은 5번째 가계부채 대책이 비판을 받는 이유다.
공급 조절만으로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를 관리할 수 없다. 핵심을 건드려 바로 세우던지, 아님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저소득,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부실 위험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연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내년 상반기에 우리나라도 금리를 올리면 빚더미에 눌리는 민생고가 하늘을 찌를 수도 있다. 고민할 시간은 없다. 지금이라도 가계부채 폭탄을 잠재울 선제적 조치가 나와야 한다.
박진아 산업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