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용현기자] "대출 이자 낮춰줄테니 집을 사라고 부추길 때는 언제고, 갑작스럽게 이렇게 대출을 옥죄면 어떻게 합니까. 진짜로 내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격을 올렸나요? 정부가 계속 부추기면서 부동산으로 투기하는 사람들이 아파트값 다 올렸는데 서러운 세입자 생활 좀 접어보려는 사람들한테 책임이 넘어오는건지"(서울 중랑구 신내동 동성공인 관계자)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주택정책에 실수요자들의 원성이 빗발치고 있다. 매매시장 진입 문턱을 크게 낮추면서 주택구입을 부추기더니 규제 일변도로 급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폭탄돌리기에 가격만 오를대로 오른 주택시장에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의 주택정책 신뢰성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택금융공사(HF)는 17일 보금자리론 대출대상 요건을 변경하고 오는 19일부터 올해 말까지 적용한다고 밝혔다.
주택담보가격을 기존 9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고, 대출 한도도 기존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내렸다. 여기에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와 주택구입용으로 한정하는 새로운 조건들도 내걸었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은행권 주담대 심사가 강화돼 보금자리론 신청 쏠림현상이 나타났다"며 "보금자리론 판매잔액이 연간 목표액 10조원을 이미 초과했다.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올해 연말까지 보금자리론 공급을 일정 부분 축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 8월 가계부채 대책을 통해 공급조절에 나서고, 투기과열지구 지정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보금자리론 규제까지 더해지는 등 정부의 주택 정책은 최근 규제 강화로 회귀한 모습이다.
현 정부 이후 다주택자에게도 청약시장 진출 기회를 확대하고, 주택구입 대출의 한도와 이율을 낮추는 등 주택구입을 부추기던 기존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급변한 정부의 방침에 당장 주택구입에 나선 수요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보금자리론의 경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보다 높은 금액의 대출이 가능했지만 조건이나 금액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주택구입을 결정한 직장인 박지은(36·여)씨는 "공공기관에서 취급하는 보금자리론은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주택금융공사의)기습공지에 부랴부랴 콜센터에 전화로 확인했다"며 "다행히 잔금일이 90일 이내로 들어와서 대출 실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숨은 돌렸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이제 '0'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올 들어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그동안 정부를 믿고 주택구입에 나서는 실수요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 송파와 강동구 일대 아파트 모습. 사진/뉴스1
일선 중개업소들도 정부의 갑작스런 대출 규제에 일정을 맞추느라 분주해졌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삼익부동산 대표는 "그거(보금자리론 규제) 때문에 매도인과 매수인에게 잔금일을 서두르자고 연락을 돌리고 있다. 최대한 잔금일을 앞당겨 진행하거나 아니면 내년 초로 미뤄야 할 상황"이라며 "가격이 좀 나가는 물건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대출을 더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의 갑작스런 정책 변화에 이자만 수십만원이 더 나가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정부의 일관성없는 대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투자수요를 양산한 정부의 주택시장 부양책에 애꿎은 실수요자들만 피해가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정부가 주택경기 하락을 두려워한 나머지 집단대출 자격 심사 강화 등 투기를 막을 수 없는 대책만을 내놔 투기꾼들은 계속 판을 치고 있다"며 "정작 실수요자들은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투기를 조장하거나 이를 방치하고 있다. 전매제한이나 청약제한 강화, DTI 상향 등 종합적인 투기방지책, 가계부채 증가 방지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기자 blind2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