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던 시미언 쇼라는 4세 소년은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뼈에서 심각한 암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1년도 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시미언 쇼의 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 젖는다. 이때 1만6000km나 떨어진 곳에서 기적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의료진이 시미언을 치료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연구진이었다. 의사들은 시미언의 몸에 암 치료제 대신 플루토늄을 주사했다. 소년은 9개월 후 결국 눈을 감는다.
1932년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키기 지역의 흑인들은 매독에 많이 걸렸다. 가난한 흑인들은 매독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들에게도 기적과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미국 공중보건국에서 매독으로 고통 받는 흑인들을 위해 무료 진료와 치료 사업을 펼친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매독 연구의 한 방편이었다. 의사들은 매독에 걸린 흑인들의 혈액과 척수를 채취했다. 검사가 끝나면 이들의 손에는 치료제 대신 아스피린과 철분제가 쥐어졌다.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1943년에 나왔지만, 흑인 환자들은 이 치료제의 처방을 받지 못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치료제가 나왔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
1951년 미국 남부의 한 담배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는 이상출혈과 체중감소로 존스홉킨스 병원을 찾는다. 그녀의 병명은 자궁경부암. 방사선 치료를 받았지만, 헨리에타는 극심한 고통 속에 사망한다. 그녀의 나이 31세, 암 진단을 받은 지 4개월 만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1973년 어느 날 헨리에타의 가족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헨리에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식이었다. ‘불멸의 세포’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헨리에타를 치료한 의사들은 그녀의 몸에서 암 조직을 떼어냈다. 그리고 세포공장에서 헨리에타의 세포(HeLa Cell)를 배양했다. 그때까지 배양된 헬라 세포는 무게만 무려 5000만톤, 길이는 10만7000km에 달했다. 헬라 세포는 각종 연구와 치료제 개발에 사용됐으며, 돈으로 환산하면 수천억 달러 규모다. 놀라운 점은 누구도 이 사실을 헨리에타의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헨리에타의 세포가 그녀의 몸속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몸 밖에서 사는 동안’ 그녀의 가족은 노숙자로 범죄자로 전락했다.
과학의 이름으로, 의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은 과학과 의학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프랑스 의사 미셸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나쁜 의사들>에서 나치 의사들의 만행을 생생히 기록했다. 지그문트 라셔라는 나치 의사는 저체온증 연구를 위해 수감자들을 얼음물 수조 안에서 죽어가게 했다. 헤르타 오버호이저는 수감자의 다리뼈를 부러뜨리고 나뭇조각과 유리 파편으로 상처를 감염시킨 뒤 치료제를 테스트했다. 요제프 멩겔레는 쌍둥이를 동시에 죽인 뒤 두 사람의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기도 했다.
그들이 저지른 행위보다 더 끔찍한 사실은 그들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악의 얼굴은 평범하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1960년 아이히만이 체포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그가 포악한 성정을 가진 ‘악인(惡人)’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였다. 이웃에서 흔히 보는 머리가 벗겨지고 안경을 쓴 아저씨였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암에 걸린 시미언의 몸에 방사성 물질을 투여한 의사도, 터스키기 매독 실험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존 커들러(그는 훗날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는다) 박사도, 헨리에타의 몸에서 암세포를 떼어내 세포를 배양한 의료진과 연구진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일은 명령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의 손으로 자행됐다.
고(故) 백남기 씨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가 나와 “병사가 맞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선 슬펐다. 그의 얼굴에서 어떤 악인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순진하고 태연한 표정은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흔한 의사, 흔한 아저씨의 얼굴이었다. 국정감사장에서 “오로지 주치의만이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쓸 자격이 있다. 사망진단서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자기 일에 대한 신념도 느껴졌다. 그리고 무서웠다. 위에서 열거한 의사들의 평범한 얼굴과 자기 일에 대한 신념은 백 교수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악마의 얼굴은 평범하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