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이우찬기자]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지, 최순실 대통령을 뽑은 게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헌법규정인 대의제 가치를 위반했습니다.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입니다.” 10일 오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국정농단 사태를 이렇게 평가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교수는 “청와대가 범죄의 중심”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모인 법조계 인사들은 박 대통령 스스로 헌법원리의 근간을 유린한 상황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은 존재하지만 대통령의 권위와 권한을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헌법질서 회복을 위해서는 주권자인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견해에 힘이 실렸다. 이날 토론회 내용을 발언자 중심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임지봉 교수 "박대통령, 헌법 1조1항부터 위반"
첫 발제자로 나선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의 중요한 가치를 역설하면서 박 대통령이 위반한 헌법 가치를 설명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차은택씨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 우리 사회 근간을 형성하는 헌법을 위반하고 짓밟아 헌정 중단 상태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또 "법률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들지만, 헌법은 국민이 만든다. 주권자인 국민이 만드는 헌법은 그래서 그 나라 최고의 법이 된다"며 "현재 언론에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나 직무상비밀누설죄 등 여러 법률적 책임들이 언급되지만 사실 헌법적 책임이 훨씬 더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10일 오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대통령의 중대범죄와 퇴진 그리고 그 이후 헌정질서의 검토와 모색'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이우찬 기자
이어 임 교수는 박 대통령 행위가 어떤 헌법 기본원리를 위반한 것인지 조목조목 따졌다. 가장 먼저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예로 들었다. 그는 "최근 박 대통령에게 제기된 국정농단 의혹이 사실이라면 우리 국가형태 조항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며 "민주공화국이란 정치적 내용이 민주적으로 형성되는 곳으로 헌법의 핵심이다. 자격도 없는 비선실세들이 사적 이익을 위해 밀실에서 국정을 농단하고 이를 대통령이 지시하거나 묵인했다면 명백히 이 조항에 위배된다"라고 강조했다.
또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직접선거로 뽑힌 대통령은 권한을 이임 받은 것이다. 이 권한의 위임은 대통령에게만 이뤄진다"라며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본 뒤 고치고 각종 국정에 개입했다면 국민주권원리와 양립할 수 없는 게 자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헌법 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와 헌법 67조 1항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해 선출한다'와 같은 대의제 관련 조항도 거론됐다. 그는 "대통령이 비선실세의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면 헌법의 기본원리 가운데 하나인 대의제원리에 위반된다"며 "국민은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를 뽑은 것이지 최씨를 뽑은 게 아니다. 최씨가 청와대 비서관 등을 통해 국무회의 내용을 보고받는 등의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헌법 7조 2항인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와 69조 대통령의 헌법준수의무 등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먼저 임 교수는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대회 성적과 관련해 비리를 조사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등은 "나쁜 사람"이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한직으로 밀려나고 이후 공직생활을 마감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취임선서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는 말로 시작한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도 헌법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여러 헌법 기본원리를 위반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헌법수호의무도 지키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10일 오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통령의 중대범죄와 퇴진 그리고 그 이후 헌정질서의 검토와 모색' 토론회에서 임지봉 서강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우찬 기자
임 교수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허용한 박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의 근간을 뒤흔든 것이기에 헌법 유린이며 이 상황이야말로 민주적 헌정 중단과 같다"며 "대통령의 헌법 위반 책임을 묻고 헌법 유린과 헌정 중단의 상황을 바로 잡아야 진정한 '헌법의 수호'와 '헌정 질서의 회복'이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주권자인 국민은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대통령은 이에 귀 기울이고 답해야 한다"라고 주문하면서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와 국회의 청문 절차를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김남근 변호사 "직권남용 아닌 뇌물죄로 수사해야"
민변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남근 변호사는 '대통령 중대 범죄 어떻게 봐야하는가'란 주제로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섰다. 김 변호사는 최씨의 국정논란에 대해 "언론에서 계속 박 대통령과 그 비선조직들의 국정농단 행위들을 폭로하면서 이러한 행위들이 박 대통령 퇴진의 충분한 사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도 "박 대통령을 비롯해 최씨와 재벌들에 대해 수사할 범죄 혐의가 무엇이고 대통령의 중대범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또 이로 인해 야기된 국정 혼란을 어떤 방향으로 다잡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먼저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범위'를 이야기하면서 우선 뇌물죄를 배제하고 직권남용죄로 제한된 검찰의 수사 프레임을 문제 삼았다. 그는 "검찰이 직권남용죄란 제한된 틀에 수사를 한정지으려 한다. 직권남용죄 틀에서만 보면 청와대는 행정적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모금을 강요당한 재벌은 피해자에 불과하다"라며 "하지만 재벌은 자신들과 관계된 이권을 정책에 반영해줄 것을 지속해서 제기해왔다. 삼성을 비롯해 롯데그룹, SK그룹, 부영그룹 등도 사면, 검찰수사, 세무조사 등 이익의 제공이나 불이익을 면할 것을 기대하고 거액을 제공했기에 뇌물죄 수사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박 대통령의 비선조직들에 기밀을 제공하고 국정운영에 참여하도록 한 행위는 군사기밀누설죄를 비롯해 외교상 기밀누설죄, 공무상비밀누설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재벌들로부터 수백억원의 자금을 모집해 미르·K스포츠재단 등을 설립한 행위는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다. 지난 1997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뇌물수뢰 사건에서 이미 포괄적 뇌물죄의 법리가 정립됐다"면서 그 근거로 "뇌물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해 공여되거나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본 판례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김 변호사는 대통령과 재벌에 영향력이 큰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직접 출연기금 모금에 나선 사실과 두 재단 설립을 박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한 사실을 언급했다. 또 기업들이 재단의 목적인 문화 융성이 아니라 개별 이익을 위해 돈을 내놨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르재단 등의 설립은 별개의 문제이고 박 대통령이 재벌기업들로 하여금 제3자인 재단에 자금을 내도록 했다면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최씨에 대해서는 "기밀누설죄를 비롯해 뇌물죄 공범과 횡령, 배임 등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박 대통령의 헌법질서 위반행위에 대해 "충성문화와 파벌문화가 뿌리내리고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정에 대한 견제와 기능이 사라졌다"며 "정책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문화가 사라지고 대결과 갈등이 일상화되는 한편 정경유착 현상이 노골적으로 뿌리내렸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퇴진만이 아니라 파괴된 헌정질서를 회복해 군정을 안정시킨다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하고 수사 대상과 범위에 성역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교수 “시민 주도 ‘비상시국회의’로 문제 풀어야”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국가의 수준에서 과거 부족·원시국가 수준으로 떨어뜨린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며 탄핵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조폭과 국가의 공통점은 돈을 뜯어가는 것이고, 차이점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는 반대급부를 내놓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박근혜정권이 국민에게서 돈을 뜯어가면서도 철저히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한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헌법해석에 대한 주도권도 정치권이 아닌 시민사회가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치권은 박 대통령에게 국회가 추천하는 책임총리, 박 대통령의 명확한 2선후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 교수는 “여의도 정치권에서 말하고 있는 논의들은 정치공학적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책임총리, 2선후퇴는 부차적 문제”라면서 “헌법을 정지시키고 복귀시키기 위한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비상시국회의’를 조속히 결성할 것을 제안했다. 한 교수는 “국민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도록 고민과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비상시국회의를 만들어야 한다”며 “비상시국회의가 거국내각을 구성하든 책임총리를 세우든 의사결정을 하고 사후적으로 그들을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특히 “어떤 법률을 위반했는지 개인범죄를 세부적으로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 붕괴를 어떻게 규탄하고 복원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시민단체 자료를 보면 예산내역 안에 ‘VIP말씀’으로 대통령 말을 인용하고 반영된 예산이 546억여원이다”라며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면 대통령 입으로 나오고 관료가 움직인다. 법이 개정돼 예산으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씨의 국정농단이 개인범죄일뿐만 아니라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고 삶을 옥죄는 것으로 나아가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게 한 교수 진단이다.
김동춘 교수 “공사 구분능력 없는 사람이 대통령 된 게 비극”
비법조계 인사로 이날 토론회에 나온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권력의 사유화 현상이자 약탈국가화 현상”이라고 이번 사태를 규정했다. 그러면서 “공사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국가권력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비극이 시작됐다”며 “청와대가 범죄의 중심”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박 대통령을 “부친의 명예회복과 정당화 외에는 아무 비전이 없는 사인이 대통령에 등극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특히 “박 대통령은 스스로의 판단력을 갖지 못한 상태로 재벌-언론-새누리당의 권력 카르텔의 도구로 기능했다”며 “사드배치, 위안부 협상, 법인세 인하 등 재벌과 미국·일본의 도구로 기능했다는 점이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집권세력으로 박 대통령의 헌법유린에 대한 새누리당의 책임도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최순실 사태를) 미리 인지했으면서도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범”이라며 “새누리당은 도덕·정치적 책임을 져야한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김 교수는 현재 국면을 87년 6월 항쟁 전야라기 보다는 4·19 전야의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오랜 투쟁의 과정이 아니고 ‘이명박근혜’로 불리는 보수우파 체제 내부가 자기모순으로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단순한 범죄일뿐만 아니라 많은 정책으로 나타났다”며 “국정교과서·사드배치·한일정보협정 문제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적 관점에서 정국 수습방안을 발제한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 주도의 국무총리 임명과 대통령의 사임이 헌법적으로 가장 무난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대통령의 2선후퇴에 대해 송 교수는 “헌법상 대통령이 직을 유지하면서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넘겨주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의 2선후퇴는 정치적 약속에 불과해 지지율이 다양한 변수가 있는 정치 상황에서 지지율이 어느 정도 회복돼 대통령이 복귀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국민들은 대통령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본인도 직무수행의지가 없고 무능하다. 대통령 스스로 거취를 빨리 밝히는 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책임정치”라고 주장했다.
탄핵에 대해서는 “헌법위반의 문제가 매우 중대해 당장 파면해야 할 사유로 탄핵대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없고, 대통령이 다시 직무수행에 복귀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의존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송 교수는 “‘명예혁명’과 같은 상황이고 역사적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송 교수 또한 사태 해결을 위해 시민사회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국회를 움직이는 정당은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견해다. 송 교수는 “현재 정국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탄핵 성격을 지닌다”며 “국민이 주도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각 정당이 이를 정책과 국정운영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광연·이우찬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