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기자] “마곡지구까지 마치고 나면 더 이상 서울에 큰 택지 개발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도 이제는 대형개발 대신 소형임대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시기입니다.”
변창흠(51)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은 공사의 비전을 이렇게 제시했다. SH공사는 집 한 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서울에서 주거복지를 담당하며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상암 DMC, 마곡지구, 은평뉴타운 등 서울의 크고 작은 공공개발과 도시재생을 맡아 연간 예산이 어지간한 광역 자치단체를 웃돈다. 막중한 역할을 맡다 보니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채도 상당해 서울시 막대한 부채의 원흉으로 불리며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한다.
변 사장은 지난 2014년 11월 취임했다. 첫 학자 출신 서울시 출자기관 CEO이자 최연소 사장으로 취임 당시 의문의 눈초리도 있었다. 그러나 역대 어느 사장보다도 활발히 현장을 누비며 조직에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1996년 공사 연구원으로 첫 인연을 맺은 만큼 조직과 업무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택지 개발과 주택 건설에 치중되던 공사의 무게추를 도시 재생과 주거 복지로 옮기고 있다. 변 사장을 만나 공사가 가진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과 앞으로 남은 임기에 대한 계획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변창흠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사진/서울주택도시공사
벌써 취임 2주년이다.
저도 사장직을 맡으며 상당히 용기를 냈는데 처음 왔을 때는 안팎에서 실무를 잘 모르는 교수가 와서 건설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질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2년이 지나 지금 돌이켜보면 잘했다는 평가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처음 했던 걱정은 안 하는 것 같다.
직원들에게 ‘재생정비사업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자’, ‘주거복지에서도 임대주택 관리수준을 넘어서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공사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 고민하는 시점에서 공공디벨로퍼로서 지금까지 택지를 개발해 돈을 벌던 것과 다른 수익모델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빚이 많은 상태에서 돈은 많이 들지 않더라도 공공성은 유지하면서 지역에 지속성을 갖고 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남은 기간 성과를 내겠다.
마곡지구 개발 상황은 어떤가.
공사나 서울시 입장에서 가장 큰 사업 중 하나로 앞으로 서울에서 100만평 이상 개발할 곳은 더 이상 없다. 이 자리는 서울 도시기본계획 2030에 부도심으로 잡힌 지역으로 단순히 주택단지가 아닌 광역 중심의 부도심을 만들어야 한다. 주거단지, 산업단지, 서울식물원 등이 한데 어우러져 일자리 창출, 놀이, 레저, 주거 기능 등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관리·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이나 연구시설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데 중소기업이나 제조업을 위한 시설도 고려하고 있다. 혁신기지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마곡도전숙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걸맞은 시설을 개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특히, 부지를 매각해야 수익을 거두는 공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지만, 박원순 시장과 논의해 산업단지 중 10%는 당장 개발하지 않고 남겨둘 계획이다. 산업이란 것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미래세대나 다른 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 수요에 맞춰 활용할 수 있도록 남기기로 했다.
구룡마을 개발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지 않다.
구룡마을이 안타까운 부분은 마곡이나 내곡, 세곡과 달리 일반적인 보상방식으로 우리가 줄 게 없다는 점이다. 구룡마을 거주자 대부분은 자기 땅이 아닌 데다, 주택이 아닌 임시 공장용 건축물에 살다 보니 주택으로 보상할 수 없고 임대주택 입주권밖에 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거주자 입장에서는 임대주택 입주권만으로는 바로 길 건너 아파트가 평당 4000만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공사는 민간업체가 아니므로 물건을 깎거나 덤을 주는 것처럼 보상할 재량이 없이 짜인 틀 안에서 전례, 판례, 규정을 따져가며 일을 해야만 한다. 현재는 구룡마을만의 독특한 경관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며, 현 거주자들의 재정착을 위한 용역을 추진 중이다. 당장 거주자들에게 돈을 더 줄 수는 없어도 에너지 관리시설에 투자해 관리비를 싸게 하거나 일자리 창출 시설을 만들어 실질적인 자립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부채는 고질적 문제다.
서울시 부채의 대부분을 공사가 차지하고 있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땅 조성할 때 늘었다가 분양하면 자동적으로 해결한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공사 부채 17조원 중 임대보증금이 6조5천억원 정도 된다. 임대보증금이니까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의미에서 부채로 잡힌다. 게다가 임대주택 입주자들이 부담을 덜기 위해 전세전환을 할 경우 공사는 수입 없이 부채만 몇 배 늘어나는 셈이다. 임대보증금이라는게 임대주택이 존재하는 한 현 거주자가 살든지 다음 거주자가 살든지 어차피 우리에게 있는 돈인데 이렇게 부채로 부담이 되면 임대주택을 늘려야 하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다.
“빚 많다고 덮어놓고 손가락질…
뜯어보면 이만큼 건전한 회사 없어”
그 다음에 3조5천억원 가량은 선수금으로 마곡지구같이 개발 과정에서 공정률에 따라 회계상 잡히는 부채로 현금을 지속해서 회수하기 때문에 큰 부담이 아니다. 또 택지 개발 등 사업 과정에서 빌리는 공사채와 국민주택기금이 각각 3조원으로 다 합치고 나면 순수한 부채는 1조원 가량에 불과하다. 대부분 사업 과정에서 불가피하거나 회계상 잡히는 부채들로 이렇게 건전한 회사가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행자부와 착한 부채, 임대주택 관련 부채, 안전한 부채를 예외로 해달라고 협의를 하고 있으며, 실제 경영평가에서는 예외로 해주고 있다. 그래도 공사채 발행할 때 너무 일률적으로 규제를 적용하거나, 실질적인 부채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고 손가락질만 하는 부분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
미래 도시재생이나 주거복지 방향을 어떻게 보는가.
2017~2018년이 지나면 마곡지구뿐만 아니라 더 이상 공사가 개발할 대규모 택지는 없다고 본다. 이제는 단순히 주택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GB를 풀기도 쉽지 않을 테고, 몇만평 정도야 있겠지만, 이전처럼 100만평이 넘는 땅도 없다. 아시다시피 서울 외곽은 다 산이고, 산이 아닌 데는 옆 동네랑 붙어 있으므로 개발할 땅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공사가 옛날에는 택지에서 돈 벌어서 주거복지에 돈 쓰던 구조라면 앞으로 택지에서 돈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완전히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어렵다. 주거복지는 임대료를 시세만큼 못 받는 데다 만들면서 부채를 얻을 수밖에 없고 오래되면 시설유지비가 더 많이 든다.
예전에 큰 단지 지어서 단순히 몇몇이 관리해서 끝났다면 앞으로는 조그만 단지를 여러 곳에 짓다 보니 더 많은 인력이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또 정비사업은 민간에서 해도 수익률 나오기가 쉽지 않고, 지자체는 용적률이나 용도변경을 하는데 많은 부담이 있다.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한다던가 역세권 2030사업이라던가 사업 필요성은 있는데 수익성 등을 이유로 현장에서 막힌 사업을 공사에서 새로운 모델을 찾아 열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서울에 임대주택을 10% 지으려고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에야 위례에만 2000채를 지어도 반대할 주민이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로 비교적 쉽게 진행됐다.
이제는 나대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투리땅에다 한 곳에 20채, 40채씩 지으려고 해도 교통혼잡, 경관에 기존 살던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까지 어려움이 많다. 서울 주택을 400만채라고 했을 때 10%라면 40만채를 맞춰야 하는데 이는 현재 24만채에서 2026년까지 매년 1만6000채씩 지어야 한다. 총량으로 임대주택을 더 지어야 한다는 것과 현실과의 차이는 너무 고통스럽다.
그나마 성북구 도전숙, 금천구 홀몸어르신주택 같은 맞춤형임대주택은 자치구 입장에서도 반응이 좋아 공급물량을 늘리기 위해 국토부를 설득하는 중이다. 맞춤형임대주택을 이처럼 다양하게 만드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며, 만족도도 높은 만큼 더 다양하게 하려고 한다.
변창흠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이 지난 5월 마곡지구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서울주택도시공사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