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불확실성의 시대, 선거예측은 허구

입력 : 2016-11-28 오전 11:01:37
선거는 예상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누군가 말했다. 이를 반증하듯 올해는 유독 세계 곳곳에서 예상을 깨는 선거가 많았다. 지난 4·13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과반을 잃어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고, 7월에는 지구 저편에서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찬성해 세계를 들썩이게 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승리 가능성이 95% 이상이라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패해 한동안 패닉상태에 빠졌다. 어디 그뿐이랴. 불과 일주일 전에는 프랑스 공화당 오픈프라이머리 1차전에서 그 동안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프랑수아 피옹(François Fillon) 후보가 2년여 간 여론조사 우위를 지켜온 알랭 쥐페 후보를 더블스코어로 따돌리는 이변을 낳았다.
 
프랑스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은 그의 저서 <군중심리>에서 “이념, 감정, 격앙, 신념과 같은 것들은 미생물처럼 강한 전염성을 지니고 대중에게 전파된다. 이 현상은 사회 전염이다”라고 규정했다. 적어도 브렉시트, 미국 대선, 프랑스 공화당 오픈프라이머리의 연쇄 반응은 이러한 대중의 사회 전염현상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저항과 경제 불황으로 인한 불안, 그리고 기존시스템에 대한 만성피로로 초래된 전 세계 대중들의 분노는 대륙에서 대륙으로 전염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이 당의 혁신을 도모하여 활력을 되찾고 유권자를 통해 새로운 인재를 투명하게 발굴하고자 2011년 오픈프라이머리를 처음 도입해 대선주자를 선출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14년 가을 정계로 복귀한 후 ‘대중운동연합(UMP)'을 재정비해 '공화당(LR)'으로 개명하고 2017년 대선후보를 오픈프라이머리로 선출할 것을 약속했다. 이후 모든 여론조사에서 쥐페 보르도 시장이 부동의 1위를, 사르코지 대표가 2위를 차지해 이 둘이 최종 결투를 벌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지난 11월8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 소식이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에 전해지면서 오픈프라이머리 지형은 크게 요동쳤다.
 
지난 20일 4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1차 투표에서 피옹 후보는 44.1%를 획득해 28.6%를 얻은 쥐페 후보를 크게 앞섰다. 사르코지 후보는 20.6%를 획득해 1차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겪는다. 이러한 결과는 쥐페와 사르코지의 리더십을 의심한 많은 유권자들이 피옹에게서 희망을 찾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옹 전 수상은 결선 투표를 겨냥해 “우파·중도파 유권자들이 그들의 가치가 승리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신념이 민족의 자긍심을 세울 수 있도록 나와 함께 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나는 조용히 그리고 진지하게 정확하고 강력한 프로젝트를 위해 밭고랑을 경작해 왔다. 나는 내 발걸음이 빗나가지 않게 하겠다”면서 “우리를 에워싸고 강력한 다이나미즘이 작동하고 있다…희망이 여기에 있다. 이 희망은 모든 예언을 부인하면서 프랑스 여기저기에 힘차게 드러나고 있다”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 결과 27일 결선투표에서 피옹은 68%를 얻어 쥐페를 여지없이 따돌렸고, 내년 대선의 공화당 간판스타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르봉이 말한 대중의 전염성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 대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계속해서 내년 대선 주자들의 여론조사 결과와 그들의 행보를 수시로 보도한다. 이들 중 몇몇은 여론조사 결과가 대선결과인양 착각하는 행태도 벌인다.
 
서구와 한국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지만 경제 불황과 구태의연한 기존시스템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은 별반 다를 리 없다. 그러니 지금 어느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중의 이념, 감정, 격앙, 신념은 전염성이 강해 투표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 따라서 표피적인 여론조사 결과만을 믿고 오만하거나 구태의연한 정치활동을 벌인다면 낭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의 트럼프나 프랑스의 피옹처럼 언론이나 여론조사에서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을 보라. 문제는 어떤 정치인이 기존시스템을 청산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냐는 것이다. 이점이 내년 대선의 최대 관건임을 대선 주자들은 간파해야 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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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