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표결을 하루 앞둔 가운데 재계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재계가 탄핵 정국의 혼란이 하루빨리 정리되길 기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부결시 공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극단적 우려도 흘러나왔다. 이미 정치적 불안이 극대화되면서 각종 경제지표들도 휘청이고 있다. 중국경제의 경착륙과 함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수출시장에 암운을 드리운다. 내수는 장기불황으로 접어들었다.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기업들은 연말 인사와 내년 경영계획 등 모든 일정이 사실상 멈춰섰다. 때문에 산업활동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정국이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게 재계의 다수 견해다. 다만, 재벌 기업들의 셈법은 좀 더 복잡해 보인다. 탄핵안 가결 이후 힘을 얻은 야권이 경제민주화 입법 강도를 높일 것에 긴장하는 눈치다.
재계 관계자는 8일 “탄핵 가결은 상징적으로 정치적 협치”라며 “안정성이 담보된 것임을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태 수습 국면에 진입해 국민들이 실생활에 복귀하고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정상적 소비가 이뤄져야 경제도 활력을 얻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촛불 민심이 진작부터 힘을 실어줬는데 대선 수 싸움을 하느라 뜸을 들였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더 이상의 혼란은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목소리와 함께 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성토만큼은 공통적이었다. 보수성향이 강하던 기업들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치 혼란이 상당기간 지속될 경우 경제주체의 소비 위축과 투자 지연은 물론, 생산 및 노동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이 파급되면서 내수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미 경제성장률은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특히 정국 혼란이 가중된 4분기 성장률은 전기 대비 0.0%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로 전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KDI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내년 2% 성장을 장담하기도 어렵다고 전망, 불안감을 키웠다.
수출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과격한 보호무역 성향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내 수출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미국이 중국을 집중 견제하면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수출하는 중간재 물량까지 줄어들 가능성도 대두된다. 중국도 덩달아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며 자국 기업에 대한 특혜에 집중하고 있다. 상황이 경제전쟁으로 비화됐음에도 우리정부의 대응은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지금 중국과 사드 문제 등으로 이해가 안 되는 제재들이 많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문화·관광·유통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전기차배터리 등도 중국 족쇄로 사정이 다급해졌다.
빠른 수습을 기대한다지만, 다음 난관에 대한 우려도 있다.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야당의 의원직 총사퇴 등 국정 혼란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어, 피하고 싶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힌다. 반면, 가결될 경우 민심은 안정을 되찾겠지만 곧바로 대선 국면에 진입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특히 여권이 힘을 상실한 상황에서 야권이 의회에 이어 행정부마저 장악할 경우 재벌개혁을 전제로 한 경제민주화의 파상공세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의 한 축을 정경유착에 기초한 재벌기업들이 담당하면서 이미 개혁에 대한 명분도 축적됐다는 판단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반재벌 여론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 동력으로 정권이 바뀌다면 굉장히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산 넘어 산"이라고 말했다.
탄핵소추안에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기업들에 대한 뇌물죄 혐의가 담겼다. 삼성과 SK, 롯데 등 구체적인 기업 사례도 적시됐다. 해당 기업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탄핵소추안은 “대통령의 광범위한 권한, 기업 대표와 단독 면담을 갖고 민원사항을 들었던 점, 재단법인 출연을 전후한 대통령 및 정부의 조치를 종합해 보면 출연 기업들 중 적어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특별사면, 면세점 사업권 특허신청, 검찰 수사 등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던 삼성, SK, 롯데 그룹으로부터 받은 돈(합계 360억원)은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는 뇌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칼을 벼르고 있는 특검도 대기 중이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