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8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24∼72시간 내에 처리하게 돼있는 국회법 조항에 따라 9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으로, 탄핵 가결 여부에 따라 정국은 크게 출렁일 전망이다.
권영진 국회사무처 의사국장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과 무소속 등 의원 171명이 공동 발의한 탄핵안을 보고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법에 따르면 탄핵소추안은 법사위에 회부하기로 의결하지 아니한 때는 본회의에 보고한 때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무기명 투표로 표결하게 돼 있다”면서 “이번 정기국회 회기가 내일 종료되므로 내일 예정된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을 상정해 심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보고된 탄핵안은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중대하게 위배했다”며 “박 대통령의 위헌, 위법행위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어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적극적인 위반임과 동시에 선거를 통해 국민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과 신임에 대한 배신”이라며 “탄핵에 의한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에 해당한다”면서 박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 혐의들을 나열했다.
우선 ‘헌법위배’ 행위로는 총 5가지가 거론됐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기밀문건을 ‘비선실세’ 최순실 일파에 누설해 국정에 관여케 하고, 이들의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한 것을 국민주권주의(헌법 제1조), 대의민주주의(헌법 제67조 제1항), 국무회의에 관한 규정(헌법 제88조, 제89조),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헌법 제66조 제2항, 제69조) 조항 위배로 판단했다.
또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 전 문체부 차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 소위 최순실 비호세력을 정부 요직이나 청와대 간부로 임명해 최씨 일파의 사익추구를 방조하거나 조장했고, 사익추구에 방해되는 고위 공직자들(정유라 관련 승마협회 조사 공무원)을 해임시키거나 전보시킨 것은 직업공무원 제도(헌법 제7조),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헌법 제78조), 평등원칙(헌법 제11조) 조항 위배라고 지적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을 통해 사기업에게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금품 출연을 강요하고 CJ 등 사기업 임원 인사에 간섭한 것은 재산권 보장(헌법 제23조 제1항),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제15조), 기본적 인권보장 의무(헌법 제10조), 시장경제질서(헌법 제119조 제1항) 위배라고 적시했다.
또 지난 2014년 ‘정윤회 십상시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경영진에 압력을 가해 당시 사장을 물러나게 한 것은 언론의 자유(헌법 제21조 제1항),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제15조) 조항 위배라고 주장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관련 항목도 생명권 보장(헌법 제10조) 조항 위배로 명시됐다. 당초 탄핵가결의 키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내 비박계가 삭제를 요청했지만, 참사 당일 대통령이 머리 손질에 시간을 허비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야권은 비박계의 요청을 거부했다.
탄핵안은 “박 대통령은 최고결정권자로서 피해상황이나 구조 진행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 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직무유기에 가까운 일”이라고 질타했다.
‘법률위배’에는 제3자 뇌물죄가 포함됐다.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설립과 모금 과정에서 삼성과 SK, 롯데 등이 출연한 360억원과 롯데의 70억원 추가 출연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 형법 제129조 제1항 또는 제130조 위반이라는 판단이다.
당시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문제가 있었고, SK는 최태원 회장의 특별 사면이 현안이었다. 롯데는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었고, 면세점 인허가도 큰 문제였다.
또 플레이그라운드, 더블루케이 등 최순실 관련 회사에 혜택을 주기위해 KT와 포스코 등 사기업을 압박한 것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형법 제123조) 및 강요죄(형법 제324조) 위반이라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하남시 ‘복합 생활체육시설’ 관련 서류 등 총 47회에 걸쳐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순실에게 공용 이메일 또는 인편으로 전달한 것은 공무상비밀누설죄(형법 제127조)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탄핵안은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과 비리 그리고 공권력을 이용하거나 공권력을 배경으로 한 사익의 추구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각하다”며 “국민들은 이러한 비리가 단순히 측근이 아니라 박 대통령 본인에 의해서 저질러졌다는 점에 분노와 허탈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공직으로부터의 파면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의 단절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을 훨씬 상회하는 ‘손상된 근본적 헌법질서의 회복’을 위한 것”이라며 “국론의 분열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론의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탄핵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선 재적의원의 3분의2인 200명이 필요하다. 탄핵안을 발의한 171명과 민주당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 등 172명이 전원 찬성한다고 가정해도 여당 측에서 28명의 찬성표가 더 필요하다.
일단 야3당은 탄핵안 부결시 의원직 전원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새누리당을 압박하고 있다. 20대 국회해산도 각오했다는 의지다.
만약 부결될 경우 그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정국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이를 일종의 면죄부처럼 해석해 국정 주도권 회복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