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한국정치의 문제, 존경받는 정치인의 부재

입력 : 2016-12-19 오후 1:54:59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 당하고 청와대 관저에 칩거한 지 일주일째 되던 지난 토요일, 한파에도 아랑곳 않고 서울 광화문광장에 65만 명의 인파가 다시 모였다. 이번 8차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황교안 퇴진”과 “탄핵인용”을 크게 외쳤다. 박 대통령의 권한정지로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넘겨받았지만 많은 국민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간 황 총리는 박 대통령의 구미에 맞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승승장구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사실상 방해하며 끝내 무산시켰다. 어디 그뿐이랴. 그의 인품은 또한 어떠한가. 무표정하고 근엄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과 몸에 배인 특권의식은 황제의전 일화를 연속으로 만들어내기에 손색이 없었다. 정국이 수렁에 빠졌는데도 많은 국민이 황 총리를 마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총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황 총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 국민이 그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의 지난 15일 발표에 따르면 황 총리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은 불과 3.6%에 그쳤다. 이런 황 총리가 대한민국을 끌고 가고 있으니, 광장정치는 쉽게 종말을 고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만큼 대통령이 인기가 없는 프랑스에서도 공교롭게 지난 6일 새 수상이 임명되었다. 우리의 탄핵정국과는 달리 마뉘엘 발스 수상이 내년 1월22일 치러지는 좌파 대선주자 오픈프라이머리에 출마하기 위해 사임했기 때문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발스 수상의 후임으로 베르나르 카즈네브 내무부장관을 임명했다. 카즈네브 수상은 내년 5월 새 대통령이 탄생할 때까지 프랑스 사회당 정부를 이끌게 된다.
 
그러나 올랑드 대통령의 카즈네브 카드는 뜻밖에도 사회당 정부에 청신호를 불러왔다. 많은 프랑스인이 카즈네브 새 수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프랑스 일요신문 <주르날 뒤 디망슈>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프랑스인 51%가 카즈네브 수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카즈네브를 수상에 임명한 올랑드 대통령 지지율도 15%에서 19%로 4%p 뛰면서 올 해 들어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올랑드 대통령의 카즈네브 수상 발탁에 대해 프랑스 국민들은 일관성 있고 효율적이며 연속성을 유지한 인사라는 호평을 내놨다.
 
프랑스인들은 카즈뇌브 수상의 기품 있는 풍채를 맘에 들어 했고, 그의 품위 있고 올바른 정치력을 높이 샀다. 53세의 카즈네브 수상은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변호사를 한 경험이 있다. 그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영화 <쉘부르우산>의 배경이 된 프랑스 북동부 쉐르부르(Cherbourg) 시의 시장을 역임했고, 노르망디 망슈(Manche) 지역의 하원의원을 지냈다. 2012년 대선에서 올랑드 당시 후보의 선거캠프 대변인으로 대중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그는 2014년 4월 내부부장관에 발탁되어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내무부장관 시절 카즈뇌브는 두 차례의 대형 테러를 진압하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 1월 파리 테러에서 보여준 카즈네브의 위기 대응 능력은 프랑스인들의 신망을 사기에 충분했다. 카즈뇌브는 국가 안전에 대한 노선에 있어서는 자신이 속한 좌파와도 때때로 부딪치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다. 어느 장관은 “카즈뇌브는 든든한 정치인이자 흩어진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비상시국에 전혀 믿음을 주지도, 흩어진 국민을 끌어 모으지도 못하는 인기 없는 황 총리와 대조적인 카즈네브 수상의 품격과 국민적 지지를 보면서 어깨가 축 처지고 맥이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의 묘미란 반전일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국민의 염원에 부합한 새 인물을 수상에 임명함으로써 위기국면을 일정 정도 쇄신했다. 우리의 경우 헌정을 유린한 대통령을 탄핵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 정국은 달라진 것이 없다. 정치권은 여전히 지리멸렬하고 있으며 국정을 운영하는 장관 중 국민이 신뢰할만한 인물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염원대로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다면 당장 60일 내에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대선 정국에 들어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고 정책이나 비전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도대체 선거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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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