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박 대통령, 최소한의 리더다운 모습 보여야

입력 : 2016-12-05 오전 11:07:39
지난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160만 명의 인파가 몰려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찬란히 물결치는 촛불은 숭고했고 한줄기 희망이었다. 굽이굽이 도는 촛불행렬에 ‘헨젤과 그레텔’의 숲속 길이 투영되는 까닭은 왜였을까. 마음씨 고약한 계모가 헨젤과 그레텔을 숲 속으로 데려가 버리자 남매는 길을 따라 몰래 흘린 하얀 돌들이 달빛에 반사되는 것을 이정표 삼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는 그림형제의 동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이 혼란한 정국을 밝히는 하나의 이정표가 돼 주길 내심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감동의 동화를 쓰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헨젤과 그레텔의 새엄마보다 더 지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엄동설한에 주말마다 시민들을 광장으로 내 몰고도 눈 하나 깜짝 않더니 지난주 화요일에는 5분짜리 대국민 담화로 또다시 속임수를 쓰려 했다. 이 담화는 촛불의 염원에 동문서답하는 내용이었고 인간적 고뇌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수사에 불과했다. 여전히 박 대통령은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했고 스스로 거취도 결정하지 못하는 소인배였다. 이러한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비참하고 서글픈 것은 혼자만의 느낌이었을까.
 
프랑스에서도 대통령의 리더십은 땅에 떨어져 있다. 한국과 막상막하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이 되어 임기 내내 지지율 20%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기자들에게 시리아 공격에 관한 군사기밀을 누설해 책으로 나오는 해프닝까지 벌이며 그나마 남은 신망마저 잃고 지지율도 7%로 추락했다. 한국의 박 대통령 지지율(4%)보다는 조금 낫지만 사실 도토리 키 재기다. 이러한 저조한 지지율은 올랑드 대통령에게 정치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장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를 놓고 무척 큰 고심에 빠져야 했다.
 
엘리제의 침묵이 커지자 프랑스 언론과 정계는 온갖 추측을 내놓고 예의 주시했다. 마침내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1일 밤 텔레비전 담화를 결단의 장으로 삼았다. 눈에 띄게 흥분한 올랑드 대통령은 담화발표 마지막 순간에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사람들을 폭넓게 재집결 시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대통령 선거에 후보가 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 포기가 내 경제·실업정책의 실패를 고백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그간의 정치적 성과를 조목조목 언급하기도 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나오자 프랑스 정치인들의 반응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올랑드 대통령의 친구이자 최대 라이벌인 마뉘엘 발스 총리는 “이는 국가수반의 선택이다. 올랑드에게 나의 감동, 존경, 충성, 애정을 전하고 싶다”고 AFP통신을 통해 발표했다. 좌파 오픈프라이머리(2017년 1월 22·29일)의 유력 후보인 아르노 몽부르 전 경제부 장관은 올랑드 대통령의 결정에 “현명하고 현실적이고, 통찰력 있고, 매우 존경할만하다”고 경의를 표했다. 공화당의 공식 대선후보인 프랑수아 피옹도 트위터에 “공화국의 대통령은 자신의 실패로 인해 더 이상 멀리 나갈 수 없음을 통찰력 있게 인정했다”는 글을 올렸다.
 
올랑드는 박근혜처럼 국민의 신망을 잃은 무능한 대통령이었지만 이렇듯 결말은 달랐다. 올랑드 대통령은 국가와 당을 위해 명민한 지성으로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지지율 7%의 대통령이었지만 리더가 내려야 할 결단의 시기나 방향을 잘 알고 절묘하게 타이밍을 포착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어떠한가. 그녀가 청와대에 숨어 벌이는 일련의 행동 속에 국가와 국민은 과연 존재하는가. 미국의 어느 심리학자는 일본인이 스파이트(Spite) 행동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남이 잘 되는 것은 도저히 볼 수 없으니 같이 죽자는 셈법이 스파이트 행동심리다. 박 대통령도 일본인처럼 이런 스파이트 행동심리가 강한 것은 아닐까. 혼돈에 빠진 국정을 계속 방해한다면 대한민국은 침몰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박 대통령이 이제라도 리더다운 결정을 내려 한 줌 남은 체면이라도 세워주길 바란다면 이 또한 부질없고 어리석은 희망일까.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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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