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2의 조선·해운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선제적인 구조조정안을 내놓을 것을 지난해부터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철강업계가 구조조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어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철강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를 맞이하는 철강업계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한국철강협회 회장이기도 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올해에도 철강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요 정체와 통상마찰 심화로 험난한 한 해를 보낼 것"이라며 "업계 스스로 추진해온 철강산업 구조개편 노력을 지속해 체질 강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확정된 것이 없이 준비된 형식적인 멘트는 정부의 입장에서 답답할 노릇이다. 이날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자와 만나 “철강 구조조정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데, 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통상환경, 글로벌 공급과잉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철강산업 구조조정) 사업재편을 조속히,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주 장관은 일부 철강사의 구조조정 반발에 대해서 “실제로 구조조정 계획을 냈고, 다만 일부 시행과정에서 준비나 절차 때문에 시간이 지연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 장관은 철강업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맡겼지만, 속도감 없이 지지부진한 점에 대해 에둘러 아쉬움을 표현한 셈이다.
이날 신년인사회 화두 역시 ‘철강 구조조정’이었다. 권오준 철강협회장은 인사말에서 올해 업계가 추진해야 할 첫 번째 도전과제로 ‘철강산업 구조개편’을 꼽았다.
권 회장은 “그 동안 업계 스스로 추진해온 ‘철강산업 구조개편’ 노력을 지속해 체질을 강화하고, 설비감축, 업계간 통합 등 과감한 구조개혁으로 성장기반을 마련하자”고 당부했다.
정부와 철강업계 모두 철강 구조조정에 대해 공감했다. 하지만, 자율적 구조조정에 맡기다 보니 속도감이 떨어졌고, 흐지부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부는 자율적 구조조정 성과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차원의 구조조정’ 방향으로 선회해 철강업계를 압박할 가능성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가 최순실 게이트 등 정치적 문제로 혼란한 틈을 타 철강업체들이 구조조정 버티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일자, 이에 담당 고위 공무원이 서로간에 공감하고 추진하고 있는 상황을 본질과 관계없는 정치적 사안으로 눈치보고 있는 업계의 안일한 태도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동국제강이 후판 공장을 매각하거나 가동중단 하면서 정부 정책에 동참할 뿐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모두 공급과잉에 대한 책임 공방만 따지는 분위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업체들 모두 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설비를 감축할 경우 향후 경쟁사에 시장을 빼앗길 수 있어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 차은택과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포스코의 광고계열 자회사 '포레카' 매각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과 권 회장이 깊숙이 관여됐다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진술이 나와 취재진의 관심은 권 회장의 입장 표명에 집중됐다.
그러나 권 회장은 민감한 질문은 피하겠다는 듯 행사가 끝나자 도망가듯 발걸음을 옮겼다. 철강출입기자단은 물론 검찰 등 사회부 출입기자들의 쏟아지는 연임에 대한 질문에도 "연임은 현재 심사를 받는 중"라며 즉답을 피했다.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권 회장은 지난달 이사회에서 연임 의사를 밝혔으며, 이달 중으로 CEO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심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안종범 수석의 권 회장 개입 진술이 나온만큼 CEO후보추천위원회도 쉽게 연임 결정을 내리기엔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철강업계가 구조조정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고로 전경. 사진/포스코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