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기자]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17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조카 장시호씨와 함께 삼성 등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후원하도록 강요한 사실을 부인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가 진행한 첫 공판에서 최씨의 변호인은 "은퇴 선수가 재능을 기부하고, 인재를 양성해보겠다는 취지를 듣고, 이에 공감해 설립을 도와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씨 변호인은 "영재센터의 실제 운영자를 보면 회장 박재혁을 비롯해 이규혁, 제갈성렬 등 국민 많이 아는 스포츠 스타가 포진하는 등 재능 기부 취지에 공감했다"며 "설립되면 김종 전 차관에게 운영에 대한 후원을 알아봐 달라고 했지만, 삼성 등 기업을 특정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를 동의하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최씨 역시 "같은 입장"이라면서 "좋은 취지에서 도와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도 삼성에 후원을 강요한 혐의를 부인했다. 김 전 차관의 변호인은 "김 전 차관은 협박한 것이 없고, 안종범 전 수석의 메모 등 증거에 의하면 청와대와 삼성이 직접 소통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후원 직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독대했다"면서 "특검에서도 삼성이 영재센터에 지원한 금액을 대통령의 뇌물로 보고 있고,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안 전 수석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최씨 등은 지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삼성그룹 프로스포츠단을 총괄하는 김재열
제일기획(030000) 스포츠사업 총괄사장에게 압력을 행사해
삼성전자(005930)가 영재센터에 총 16억2800만원을 후원하도록 하는 등 직권남용·강요 등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문체부 산하 공기업인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영재센터에 총 2억원을 후원하게 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다만 장씨는 이러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영국 삼성전자 상무가 보관하고 있던 영재센터 후원 제안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장씨의 지시로 이규혁 전 스포츠토토 빙상단 감독이 삼성전자에 제출한 이 제안서는 최씨의 지시로 장씨가 작성한 제안서와 거의 흡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두 제안서는 한 눈에 봐도 거의 일치하는 것이 확인된다"며 "후원 강요 혐의에서 최씨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영재센터에서 압수한
KT(030200) 스포츠단 창단 제안서,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관련 서류, 문체부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 관련 서류 등이 장씨가 김 전 차관에게 받았거나 줄 문건으로 보인다면서 두 사람이 밀접한 관계임을 주장했다. 특히 장씨의 금고에서 발견된 문건에는 'Mr. 팬다 서류'란 글이 있으며, 이와 관련해 영재센터 직원들은 검찰 조사에서 평소 장씨가 김 전 차관은 '팬더'라 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찰은 삼성전자에서 영재센터로 16억2800만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했으며, 당시 양측이 주고받은 메일 중 '후원계약 변경 확인서-당초 5억원을 14억8000만원으로', '금일 오전 중으로 업체등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9억8000만원 지급-내부적으로 준비해 4월2일까지 차질 없이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3월2일 계약서 날인하고 퀵으로 보내주십시오' 등 내용이 후원하는 측이 저자세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김 사장이 국제부위원장이 선임되는 과정에 문체부의 영향이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평창 조직위 사무총장의 진술서를 보면 "문체부로부터 국제부위원장 설립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조양호 위원장이 있는데 굳이 별도의 국제 담당을 도입할 필요성이 적다고 판단된다", "문체부에서 오더를 받은 것"이란 대화가 확인됐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비선실세’ 최순실(오른족)씨, 조카 장시호(왼쪽 두 번째), 김종(왼쪽 네 번째) 전 문체부 차관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