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지주회사 체제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페이퍼컴퍼니인 기존 순수지주회사에서 자체사업을 가진 사업지주로 대세가 변했다. SK를 시작으로 삼성과 현대중공업 모두 사업지주로 방향을 설정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로 총수 일가의 현금조달 창구가 막히면서, 배당 및 지분투자로 수익성을 보존케 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6개사로 분할해 그중 현대로보틱스(가칭)를 로봇 및 자동화 사업을 수행하는 사업지주사로 설립한다. 현대로보틱스에 대한 지배주주 정몽준 이사장과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나눔재단 등 특수관계인 지분은 13.33%다. 향후에는 지분 스왑 또는 합병 등의 방법으로 지배력을 확대할 것이 확실시된다. 특히 현대로보틱스는 알짜 회사인 현대오일뱅크 지분 91.13%를 보유해 지배지분순이익과 배당 등을 늘릴 수 있다.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는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지분은 지주사에 흡수될 가능성도 있다. 결과적으로 지배주주에 직결되는 지주사의 자산가치가 대폭 증가된다. 현대중공업은 내달 2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사 분할 안건이 승인되면 4월1일 지주회사 설립 후 9월30일까지 순환출자 해소에 나선다.
삼성도 사업지주인 삼성물산이 지배구조 정점에 서게 된다. 삼성전자 인적분할 후 삼성물산과 합병하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완료된다. 헤지펀드 엘리엇의 제안으로 명분도 확보했다. 이 부회장은 사업지주를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취약한 지배력을 개선하는 한편, 여러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브랜드 소유권도 수렴할 수 있다. 다만, 경제민주화 입법과 특검수사 등 난관이 많다.
앞서 SK는 2015년 8월 SK C&C와의 합병을 통해 순수지주사에서 사업지주로 변경했다. 이후 M&A 등 외형을 키워왔고, 최태원 회장의 주식자산과 배당 수익도 커졌다. SK는 최근 LG실트론을 인수하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 입지를 굳히고 있다. 재계는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승격시키는 게 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막 단계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SK의 통신사업 지분과 SK텔레콤의 SK하이닉스 지분을 스왑하거나, SK텔레콤 인적분할 후 SK하이닉스 지분 소유 회사가 SK와 합병하는 방법이 거론된다. 지분 조정 후에는 SK텔레콤에 대한 최 회장의 지분 증가와 함께 SK하이닉스로부터 배당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2000년대 LG와 CJ 등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때는 순수지주회사가 대세였다. 최근 사업지주가 각광받는 이유는 당국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로 지배주주 일가의 현금창구가 축소된 탓으로 풀이된다. 합법적인 현금확보 수단은 배당이며, 배당을 확대하는 데는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이 높은 지주사가 직접 사업을 수행하며 재원을 확충하는 게 유리하다. 2018년부터는 등기 여부와 관계없이 보수총액 순으로 임원 보수가 공개되면서, 총수 일가에 대한 고액보수의 지급 근거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