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즈음 진료실에 아주 어린 아기가 찾아 왔다. 만 3세 6개월 정도의 여자아이인데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다. 눈빛은 술에 취한 듯하며 제정신이 아닌 듯 허공을 응시하고, 귀신이라도 잡을 듯 팔을 공중에 휘휘 젓는 모습이었다.
아이는 생후 13개월경 경련을 시작하였는데 경련 조절이 잘 안 되는 약물 난치성 간질 경과를 보인 채 2년반이 지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는 오르필, 케프라, 카마제핀, 샤브릴, 물경 4종류의 항경련제를 복용중인데도 경련 조절이 잘 안돼 하루에 100여회 눈알이 위로 뒤집어지는 형태의 경련을 한다. 과다한 항경련제에 취한 상태로 정상생활이 안되며 발달장애까지 보이는 상태였다.
아이는 부모의 희망에 따라 한방치료를 병행하기 시작하며 3주 가량 경과하자 경련이 잦아들고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되기 시작했다. 또한 눈 맞춤이 또렷해지며 상호작용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아이의 치료가 잘 되기는 했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미 너무 긴 시간이 경과했다는 것이다. 아이는 지난 2년 반 동안 경련조절이 안되고 과다하게 항경련제에 노출되다 보니 정상적인 발달을 할 기회를 놓쳤다. 만일 2년 반 전에 아이가 적절한 한방치료를 병행했다면 아이의 운명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문제는 지난 2년 반 동안 아이의 경련 조절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부모가 담당주치의로부터 언질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는 항경련제가 하나씩 늘어 날 때마다 아이가 치료가 될 것이라 희망을 가지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두 종류 이상의 항경련제를 복합 투약함에도 불구하고 경련조절이 잘 안되면 대부분 난치성 간질 경과를 보인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더구나 4종류 복용에도 경련이 반복된다면 사실상 항경련제를 이용한 경련조절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담당의사는 환자에게 이런 정보를 제공했어야 한다. 그래야만 환자가 자신의 진료와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의사 본인의 진료가 최고이고 최선의 진료를 한다는 신념은 존중 받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부모들이 이를 회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의학에 여전히 한계가 있으며 그 피해에 노출되는 환자들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환자들에게 현대의학의 한계를 정확히 제때에 고지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환자의 선택권이 보장될 수 있다.
너무 안타가운 환자의 모습을 보며 속상해 혼잣말을 반복하게 된다.
"의사가 진료의 한계에 대한 가능성을 좀 더 명료하게 빠르게 이야기 해주었다면 줗았을 것을..."
◇ 김문주 아이토마토한방병원 대표원장
- 연세대학교 생명공학 졸업
-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전) 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 (전) 한의사협회 보험위원
- (현) 한의학 발전을 위한 열린포럼 운영위원
- (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 (전) 자연인 한의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