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폐스펙트럼장애 발달장애 아동을 진찰하던 중 어머니 보호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고백을 했다. 자신이 뇌전증 환자로 항경련제를 복용중인데 약물 부작용으로 아이가 자폐가 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복용중인 약물을 확인해보니 자폐증 유발부작용이 보고된 약물은 아니었다. 발포레이트 계열의 약물인 오르필의 경우 자폐유발 부작용이 논문으로 보고되어 있지만, 다른 계통의 약물이었다.
보호자 부부는 항경련제 부작용으로 자폐아동이 태어난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눈치였다. 때문에 임신중임에도 불구하고 항경련제 복용을 권유한 의사를 원망하듯 얘기했다. 일단 근거가 명확하진 않지만 근거가 없다할 수도 없다며 우선 진정시켰다. 그리고 담당의사에게 아이가 자폐아동으로 태어났고 약물 부작용 가능성이 있음을 고지하라고 권유하였지만 부부는 스트레스 많이 따를 일이라며 그럴 생각까지는 없다고 했다.
상담을 마치고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엄마가 그다지 항경련제를 복용할 이유가 없는 뇌전증이라는 점이었다. 경련은 1년 중 1~2회 정도로 매우 간헐적이었다. 그것도 수면중에만 발생하는 경련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위험성이 전혀 없었다. 이러한 경우 산모에게 임신부작용과 경련으로 초래될 위험성의 크기를 비교해보고 선택을 했어야 한다. 더욱 큰 위험성을 방지한다면 당연하게 항경련제 복용을 자제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뇌전증 진단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련이 주는 위험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뇌전증으로 발생하는 경련의 위험성은 두 가지로 평가될 수 있다. 첫 번째는 1차 위험으로, 경련 자체로부터 올 수 있는 위험이다. 즉, 경련이 20분을 넘어가는 중첩증 양상이면 뇌손상 위험이 따른다. 이런 경우라면 필히 항경련제를 사용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2차 위험을 평가해야한다. 즉 경련에서 파생되는 위험 평가로, 경련할 때 부상 위험이 동반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2차 위험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수면 중의 경련인지, 각성 중 경련인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뇌전증 중 경증은 주로 수면 중에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련은 습관성 질환이기에 각성 시 경련으로 바뀔 확률은 매우 낮다. 수면 중 경련이라면 활동을 동반하지 않은 안전한 공간에서 경련하게 되므로 2차 위험이 없다. 이런 뇌전증이라면 항경련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항경련제는 치료 효능이 전혀 없으며, 경련을 억제해 경련으로 올 수 있는 위험성을 조절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1차 위험과 2차 위험이 현격하다면 항경련제를 복용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항경련제 복용으로 인한 문제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항경령제는 치료제가 아니라 단순 억제재이기 때문이다. 항경련제를 복용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과 복용 시에 일어날 위험을 비교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둘 다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위험을 선택하는 것도 환자를 위한 치료적인 선택사항이 되어야 한다.
경련이 일어났을 때 무조건 경련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 과학적인 것은 아니다. 경련을 멈추기 위해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조건적으로 항경련제를 복용해야만 한다는 것도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환자의 미래를 위한 최적의 선택을 돕는 것이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선택이라고 믿는다.
◇ 김문주 아이토마토한의원 대표원장
- 연세대학교 생명공학 졸업
-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현)한의학 발전을 위한 열린포럼 운영위원
- (현)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 (현)플로어타임센터 자문의
- (전)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 (전)한의사협회 보험위원
- (전)자연인 한의원 대표원장
- (전)토마토아동발달연구소 자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