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설 연휴 이후 첫 주말인 4일 삼성전자 서울 서초동 사옥 앞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하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국정농단 사태로 성난 민심이 광화문광장에서 서초동까지 번진 것이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3거리에서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과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규탄 법률가 농성단'이 공동 주최한 '2월에는 탄핵하라. 14차 범국민행동' 사전행사가 열렸다.
설 연휴 이후 첫 주말인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앞 삼거리에서 법률가들과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전국 법학교수들, 법률가 농성단,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도움을 위한 모임 반올림 소속 시민 등 1500여명(주최 측 추산)은 이 부회장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 법원과 삼성전자 등 ‘국정농단’에 연루된 재벌기업 총수들을 규탄했다.
이날 발언자로 참석한 정연순 민변 회장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을 우리 사회에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그날 우리 사회에도 봄이 온다”며 “이재용 부회장 구속이 곧 민주주의의 새로운 봄”이라고 말했다. ‘법률가 농성단’ 대표 발언자로 나선 이호중 서강대 교수는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 때까지 시민과 함께 앞장서 싸워나가겠다”며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것은 국민들이 열망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열망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학교수 139명의 공동성명을 대표 낭독한 건국대 이재승 교수와 원광대 김은진 교수는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청구 기각은 통상적인 영장기각 발부재판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법학자들은 영장기각이 법 앞의 평등의 원칙 및 정의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이재용 한사람만을 위한 자의적인 법창조라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재용의 구속과 사법개혁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일 오후 법원 앞 집회를 마친 법률가들과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본딴 조형물 등을 앞세우고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최기철기자
집회에 참석한 법률가들과 시민들은 ‘헌법 제1조’를 법원 앞 삼거리에서 다함께 부른 뒤 오후 3시쯤부터 강남역 근처에 있는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선두에는 행진 사회를 맡은 민변 변호사들을 태운 농성단 차량이 섰으며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본 딴 조형물과 이 부회장 및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조형물이 쫓았다. 그 뒤로는 남녀 한쌍이 각각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가면을 쓴 채 ‘광화문 구치소’ 현수막이 걸린 철제 조형물 앞에 서서 선두를 뒤따랐다. 법률가들과 시민들은 행진 중 “박근혜 2월 탄핵”, “이재용 구속”, “재벌도 공범이다”등 구호를 외쳤다.
3시40분쯤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앞에 도착한 법률가들과 시민들은 사옥을 정면으로 보고 “이재용 구속”을 외쳤으며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가면과 함께 푸른색 수의를 묘사한 의상을 입은 남녀 한 쌍을 ‘광화문 구치소’에 구속시키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에 앞서 반올림 이종란 활동가는 공개 발언에서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백혈병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79명이고, 이들의 원한이 10년째 쌓여있다”며 "박근혜에게는 수백억씩 뇌물로 주면서 사망피 해자에게는 고작 500만원을 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또 오는 3월6일은 ‘삼성 백혈병 사건’을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씨의 10주기 기일이다. 그날을 꼭 기억해 여기 다시 모여달라"며 ”더이상 죽이지마라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외쳤다.
법률가들과 시민들이 4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 모습을 본딴 조형물을 앞세우고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앞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이어진 법률가 농성단 공동선언에 나선 이재화 민변 변호사와 김종서 배재대 교수는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우리 법률가들은 평등과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이 재벌의 막강한 지배권력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을 생생히 보았다”며 “약자에게는 가혹하고 군림하면서 강자에게는 비굴한 사법부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법률가로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 척결은 박근혜의 탄핵과 부역자들만을 처벌해서는 끝나지 않는다. 국정농단은 그들과 야합한 재벌이 있기에 가능했다”며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정경유착의 부패카르텔을 형성하면서 국정농단 세력과 은밀하게 결탁했고 이를 통해 재벌의 특권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려 했다. 단언컨대 삼성을 비롯한 재벌은 국정농단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근혜 탄핵은 재벌 특권이 지배하는 사회를 청산하자는 주권자의 명령이고, 박근혜 없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건설은 삼성 등 재벌들이 저지른 역사적 사회적 범죄를 철저하고 엄중하게 단죄할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요구한다”며 “이재용의 구속은 거룩한 역사적 과업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롯한 국정농단 연루자들의 모습을 합성한 그림판들이 4일 오후 한 트럭에 실려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앞에 서있다. 사진/최기철기자
이어 “사법부의 역사적 과오 또한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사법부와 재벌기업의 야합을 용서할 수 없다”며 “재벌의 특권을 비호하는 사법부라면 이 역시 주권자인 국민의 이름으로 혁파해야 한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시간도 없다. 특검은 하루빨리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고 법원은 신속히 영장을 발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률가들과 시민들은 이날 오후 4시15분쯤 집회를 마무리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한 뒤 본 집회에 참여했다. 법률가들의 법원 삼거리 앞 노숙 농성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다음 날인 지난달 20일부터 시작됐으며 변호사와 법학교수 등 법률가 278명이 동참했다. 법률가들이 법원의 결정 등에 항의하면서 집단 농성을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