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폐쇄 1년)공단에서 아스팔트로…"보상은 상식의 문제"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 인터뷰 "정부지원은 무이자대출…공단 재개만 희망하며 눈물"

입력 : 2017-02-09 오후 4:38:23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지난 8일 대전에 위치한 의류업체 SNG. 텅빈 주차장, 어스름한 복도에서부터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지상 4층, 지하 1층으로 적지 않은 규모였지만 1층 사무실 한 곳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곳에서 정기섭 대표를 만났다. 2014년부터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 대표는 지난해 2월12일부터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또 하나의 직함을 갖게 됐다.
 
1년째 불 꺼진 개성공단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 사진/뉴시스
정 대표는 지난해 2월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밟지 못했다. 그는 "기계가 잘 있는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에 대한 원망은 더 커져만 갔다. 공단 재개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틸수록 빚만 눈덩이처럼 불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총 123곳. SNG도 그중 하나다. SNG는 1981년 설립된 의류업체로, 2008년 개성공단에 입주해 900여명의 북측 근로자들과 함께 교복, 양복 등을 생산해왔다. 개성공단 생산비중을 꾸준히 늘리다가 2015년부터는 매출 100%를 개성공단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전면중단에 따른 충격은 더욱 컸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SNG와 같이 개성공단에 생산시설 100%를 둔 곳은 모두 51곳이다. 개성공단 생산비중이 70% 이상인 곳은 80여곳에 달한다. 이들에게 개성공단 공장은 또 하나의 사업장이 아닌, 사업의 전부다. 공장을 잃은 탓에 현재 입주기업 11곳은 완전휴업 상태로 전락했다. 정 대표는 "기존 매출의 5~10%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곳들도 사실상 휴업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들을 포함할 경우 123곳 가운데 3분의1은 휴업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36년간 사업을 해오면서 초기 2~3년을 제외하고 내내 흑자였다"며 "지난해 7억원의 적자를 본 건 34년여 만에 처음"이라고 씁쓸해했다. 
 
 
 
실질피해액 1조5000억+α…정부지원금 5000억원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 폐쇄라는 정부 결정 조치에 이어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지원대책에 포함된 피해지원 규모가 입주기업들에게 터무니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전면중단을 결정한 정부도 이해할 수 없지만, 정부 결정으로 공장이 문을 닫았는데 보상이 아닌 지원을 해준다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농지에 도로를 깔아도 보상이 먼저다. 입주기업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상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더욱이 지원조차 무이자대출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를 믿고 개성공단으로 향했는데, 정부 결정으로 공단이 폐쇄됐음에도 생존은 입주기업의 몫이었다. 비대위는 정부의 종합지원대책 발표 이후 3차례의 방북신청과 6차례의 길거리 집회를 이어왔지만 정부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기업인들은 아스팔트로 내몰렸다.
 
  
 
협회가 추산한 실질피해액은 1조5404억원이다. 영업손실, 영업권상실피해액 등은 일부 입주기업에 한해 산정된 액수이기 때문에 실질피해액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란 게 협회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피해액 규모에 대한 정부 입장은 다르다. 지난 12월말 기준 정부가 전문회계법인 검증을 통해 확인한 피해액은 7860억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정부는 피해기업들에게 총 4838억원을 지원했다. 정 대표는 "피해액 가운데 정부가 지금까지 지원한 금액은 4838억원으로 실질피해액의 3분의1에 불과하다"며 "그조차 공장의 기계설비를 담보로 했기 때문에 재개 후에는 기업들이 갚아야 할 돈이다. 결국 무이자로 빌려주는 것일 뿐, 보상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살길 찾아 고군분투…전망은 '암울'
 
개성공단 재개가 언제 이뤄질 지 암울한 상황에서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그렇다고 개성공단에서 해왔던 제조업을 국내에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다. 높은 인건비 탓에 단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내 인건비는 국내의 8분의1 수준이다.
 
베트남 등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시장도 답이 될 수는 없다. 정 대표는 "공장을 세운다고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며 "북측 근로자들에게 단순작업을 가르치는 데도 1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을 숙련시키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개성공단이 재개될 때까지 의류사업은 접기로 했다. 다만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사업을 구상해 연내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정 대표가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개성공단 내 SNG 공장 전경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차례 개성공단 공장을 바라보며 공단 재개를 희망하고 있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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