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폐쇄 1년)생계 벼랑 끝에 선 '사장님'

사업장 팔고 일용직 전전…희망 못버려 천막농성이라도

입력 : 2017-02-09 오후 4:38:43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개성공단 폐쇄로 피해를 입은 건 비단 123개 입주기업만이 아니다.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식자재·건설자재 납품, 유지·보수 등을 책임진 66개 영업기업(공기업 제외)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영업기업의 하청업체까지 합하면 피해기업은 5000여곳에 달한다. 입주기업에 대한 정부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원부자재를 납품하는 협력업체들까지 피해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업장 팔고 일용직으로
 
지난 7일 경기도 파주 내 한 카페에서 만난 양승래 삼성에스앤에이치 대표는 약속한 시간을 조금 넘긴 데 대해 "중고자동차 딜러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개성공단 내 영업기업 대표인 그는 2007년부터 개성공단에서 건축자재를 납품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2월10일 개성공단 폐쇄 이후 양 대표의 삶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매출이 전무하자 국내 사업장을 팔았고, 자재를 운송했던 트럭도 처분하며 1년을 버텼다. 급기야 1년전 큰 마음 먹고 구입한 자가용까지 팔아야 할 처지가 됐다.
 
양 대표의 경우 2015년부터 개성공단 영업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타격은 더욱 컸다. 전체 매출 가운데 개성공단 비중이 60%가량을 차지해오다가, 지난 2014년부터 개성공단으로 영업범위를 집중했다. 국내 시장의 사정이 워낙 어렵다보니, 상대적으로 경쟁업체가 제한적인 개성공단에서의 성장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1년 만에 기대는 절망이 됐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직전까지 연간 15억~20억원을 달성하던 회사는 공단 폐쇄 이후 지난 1년간 매출 1원도 올리지 못했다.
 
영업기업들은 입주기업으로부터 받지 못한 미수금도 적지 않다. 입주기업 가운데 10곳 이내의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미수금을 전액 지불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양 대표는 "덩치 큰 기업들 위주로 전체 미수금 가운데 40%가량을 받았다"며 "나머지 입주기업들은 정부 보상이 이뤄지면 주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50대 중반 나이에 재취업도 쉽지 않다. 급한 대로 건설현장을 찾아 일용직에 뛰어들었다. 양 대표는 "세 자녀 중 두 명은 대학생이고, 한 명은 중학생이다. 이 나이에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일단 일용직에 나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 도중 양 대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역 내 창업지원센터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는 "개성공단에서 해왔던 철물자재 사업은 국내시장에서는 수익이 나질 않아 할 수 없다"며 "괜찮은 아이템이 있으면 사업을 해볼까 해서 센터에 문의해놨는데 답변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 국회 앞을 찾는다. 지난 12월부터 시작된 영업기업들의 천막농성에 함께하기 위해서다. 양 대표는 "하루빨리 보상이 이뤄져서 길거리에서 헤매는 사장님들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업기업 대표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사진/양승래 대표
 
개성공단상회 간판도 시한부
 
개성공단 내 공장 가동이 1년째 중단되자 개성공단상회도 간판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개성공단상회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12개 조합사의 제품을 공급받아 일반인들에게 파는 협동조합이다. 지난 2015년 9월 서울 안국점을 1호점으로 서인천점, 대전둔산점 등 전국에 모두 6개 매장이 문을 열었지만 개성공단 전면중단 이후 제품 공급이 끊기면서 차례로 문을 닫았다. 본점인 안국점도 매월 1000만원가량의 적자에 시달리다 지난해 7월31일 결국 폐점했다.
 
개성공단상회 본점인 안국점은 지난해 7월31일 마지막 영업을 끝으로 폐업했다. 사진/뉴스토마토
 
개업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폐점하다 보니 이익은커녕 원금도 건지지 못한 점주들이 대부분이다. 당장 일자리도 잃게 됐다. 개성공단상회 운영총괄부장이자 안국점 점주인 김진조 부장은 지난해 7월말 가게를 접은 후 한 입주기업에 취업해 일하고 있다. 김 부장은 "개성공단에 투자한 기업이 아니고 공단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받아서 판매를 해온 곳이기 때문에 정부 지원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개성공단상회' 간판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서인천점과 북한산성 입구 아웃도어점 두 곳이다. 이들도 남은 재고를 모두 팔고 나면 간판을 내릴 계획이다. 최창식 서인천점 사장은 "재고가 일부 남아 있어 간판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재고가 다 소진되면 간판을 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개성공단상회 법인은 계속해서 유지할 계획이다.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희망의 끈이다. 김진조 부장은 "법인을 유지시키는 것은 언젠가는 개성공단이 다시 열릴 것이란 희망 때문"이라며 "공단이 재개되면 개성공단상회도 다시 문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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