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무력화·탄핵심판 결정 지연 성공…박 대통령 완승하나

법리·여론전 펼치며 '대면조사·탄핵결정시기' 주도권 장악…실리 모조리 챙겨

입력 : 2017-02-13 오후 8:00:2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국정농단 사건’ 초반 수세에 몰려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과 박영수 특별검사팀과의 대결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미 탄핵 결정이 난 여론 분위기에서 실리를 모조리 챙겼다는 분석이다.
 
우선 특검팀 조사와 관련해서는 ‘완승’에 가까운 상황이다. 특검팀은 지난해 12월21일 공식수사를 개시한 뒤 박 대통령을 향해 파죽지세로 달려왔다. 그러나 지난 19일 최순실씨 모녀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거액의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뒤 수사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수사 개시부터 법리를 검토한 뒤 지난 3일 나선 청와대 압수수색은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과 박홍렬 대통령경호실장이 불승인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5시간 만에 특검팀을 되돌려 보냈다. 당일 청와대 대변인은 “아직 탄핵심판 판결이 내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한 영장으로 무리한 수사를 실시하는 것은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므로 심히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특검팀이 상당기간 공을 들인 대면조사도 일정과 장소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청와대는 대면조사가 예정된 지난 9일 “특검보 중 한명이 SBS에 리크(누설)했다. 지금 상태로는 대면조사가 취소됐고 신뢰가 지켜지지 않으면 협조할 수 없다”며 “특정 언론사를 통해 정보가 새고 있다. 향후 약속이 지켜질까 하는 의구심 든다. 특검팀을 주시하고 있다”며 엄포 까지 놓았다.
 
박 대통령 변호인단도 같은 날 “특검보 중 1인이 SBS에 누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특검의 피의사실 누출로 인한 관계자 명예 훼손과 인권 침해, 신뢰할 수 없는 태도에 대해 강력 항의한다”며 특검에 공식 항의문을 보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그러나 특검팀은 항의문을 공식적으로 받은 바가 없었다. 특검팀 관계자는 “황당하다”고 말했다. 결국 특검팀은 한 식구인 특검보 4명을 상대로 진위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그 이후 대통령 대면조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규철 특별검사보(대변인)는 13일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는 원칙은 유지하고 있다.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 접촉하거나 협의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점은 어디까지라고 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변호인단은 대면조사에 비협조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 대면조사와 관련해서는 현재 대통령 측과 접촉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일정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대면조사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검팀 수사기한까지 13일 남았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에서는 현재 탄핵심판이 막바지다. 특검팀이 대면조사를 강하게 요구하더라도 국정농단의 또 한 축인 최순실씨 처럼 탄핵심판 출석 준비를 이유로 일정을 차일피일 미룰 수 있다. 특검팀으로서는 대면조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헌재 탄핵심판에 직접 출석할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변론기일 중에 출석하면 소추위원단이 박 대통령을 상대로 신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헌재 출석은 박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헌재 7인체제가 되는 3월13일 이전으로 지연시킬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수이다. 변론종결 기일에 대리인단을 통해 최후진술 하겠다면 기일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최후진술에 나서더라도 종전에 밝힌 입장만을 되풀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대통령이 탄핵 심판정에 나와서 할 얘기는 자신의 변명 밖에 없을 것이다. 특검이 알고 싶어 하고 조사하고 싶어 하는 내용이 아닌 반대의 얘기를 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나와서 하는 얘기를 특검팀이 수사에 유리한 진술로 쓰기에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지금은 이른바 ‘고영태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박 대통령 탄핵 대리인단이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헌재가 얼마나 단호하게 나오느냐가 관건이 되겠지만 탄핵결정 기일 연장의 빌미는 얼마든지 있다.
 
탄핵심판과 관련해서도 지연전략이 제대로 먹히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박한철 헌재소장이 퇴임한 뒤 8인체제가 되면서 대통령 대리인단의 ‘공정성’시비가 눈에 띄게 거세졌다. 결국 헌재도 이를 받아들여 22일 증인신문을 허용했다. 재판부가 23일까지 최종 의견서 제출을 주문하면서 24일 변론종결을 예고했지만 대통령 대리인단은 증인을 추가 신청하거나 신문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기간을 더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 헌재가 거부하면 박 대통령이 직접 ‘최후진술’ 카드를 던져 헌재의 결정을 무산시킬 공산도 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황도수 교수는 "지금 상황은 박 대통령 입장에서 그림을 그려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최후의 순간에 출석하겠다고 나온다면 헌재로서는 안 받아 줄 수 없다. 박 대통령 측에서 당장 공정성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재판부가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또 "이정미 재판관 퇴임일인 3월13일 전에 탄핵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이후 7인 체제에서의 7명 중 2명이 반대하면 탄핵소추는 기각된다. 이 2명은 9명일 때도, 8인 체제인 지금도 존재한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 외 여러 사정도 박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특검팀이 25일 예정 중인 수사기간 연장승인 신청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이 정계와 법조계 중론이다. 국회에서 수사기간을 연장시키는 특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새누리당의 반대로 본회의 상정이 불투명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하는 방안이 있지만 성사될 가능성은 역시 적다.
 
이런 가운데, 특검팀에게 반전의 기회를 가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울행정법원은 특검팀이 지난 10일 대통령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을 상대로 낸 ‘압수수색·검증 영장 집행 불승인처분 취소 소송 및 효력정지 사건’에 대한 기일을 오는 15일로 잡았다. 법원 관계자는 “결론이 15일 당일 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용여부는 불투명하다. 행정소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 판사는 "우리 판례상 불승인 결정이 거부처분으로 성립하려면 법규상·조리상 어떤 처분을 요구할 수 있는 신청권이 인정돼야 하는데 특검법상 특검은 신청권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불승인 결정의 효력을 정지해도 당장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청의 이익이 없어 각하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규재tv' 운영자인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정규재tv 화면캡처)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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