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기자] 금융당국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확산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서면서 금융투자 패러다임이 바뀔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때 재계를 중심으로 한 반발로 도입에 난항을 겪었지만 지난해 말 국정농단 사태와 정경유착 논란이 불거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참여 여부가 변수지만 결국에는 동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조만간 스튜어드십 코드 실무협의체가 구성된다. 실무협의체에는 금융위를 비롯해 금융감독원, 기업지배구조원, 금융투자협회, 법률 전문가 등이 참여하며, 법령해석이나 제도개선 건의사항 등을 검토하게 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자율지침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집사(스튜어드)에게는 저택이나 집안일을 충실히 관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듯이, 기관투자자들이 기업들의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13일 열린 스튜어드십 코드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금융위원회
금융위는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을 위해 참여 자산운용사에 대한 인센티브 방안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13일 열린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예정기관 간담회’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기업들의 주주친화적인 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 보다 뜨겁고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요구는 계속 커지고 있다”면서 “금융당국도 기관투자자들의 코드 채택과 이행에 어려움이 없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 유관기관이나 연기금 등 자산 보유자들이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코드에 참여하는 자산운용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도록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위에 따르면 삼성·미래에셋·한국투신·트러스톤·메리츠·라임자산운용과 제브라투자자문 등이 우선 참여하게 된다. 이석란 금융위 공정시장과장은 “현재 8개 자산운용사가 참여 의사를 나타냈고 1곳은 검토 단계에 있다”면서 “실무협의회에서 세부적인 방안이 나오는 2~3개월 후 참여 운용사들이 실질적으로 준비해 스튜어드십 코드 방안을 이행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인센티브 방안에 대해 “국민연금을 비롯해 주요 연기금 등에는 정부의 자금이 직간접적으로 집행된다”면서 “위탁운용사 선정에서 가점을 부여한다는 건 매우 큰 변수이며, 그만큼 금융당국의 의지가 강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추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 2015년부터 금융위는 이를 중점 추진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고 그 해 3월 1차 코드 제정 위원회를 구성해 12월에 코드 제정안 초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해 재계가 경영권 침해를 이유로 거세게 반발에 부딪히면서 금융위는 기업지배구조원에 코드 제정 작업을 맡기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청와대에서 대기업들에 불법으로 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투명한 기업구조 개선에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코드 도입 반대를 주도하던 전경련도 연루되면서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게다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석연히 않은 이유로 찬성표를 던진 점도 코드 도입 명분에 힘을 실어줬다. 2차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19일 7개 원칙으로 구성된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다.
전문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의 관건인 국민연금의 참여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이 사안의 가장 핵심변수는 국민연금의 참여 여부”라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문제와 이사장 구속 등으로 인해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찬성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최근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 원인 중 하나가 기관투자자의 소극적인 의결권 행사”라며 “집사(스튜어드)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셈으로,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과 기업구조개선에 대한 여론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도 언젠가 코드를 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석란 과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그동안 지배구조 관련 견제가 없다가 생기기 때문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반갑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기관투자자가 제대로 주주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당국이 의지를 갖고 도입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