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가 상장 폐지될 우려 때문에 반도체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의 최종 승자가 미국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 상장폐지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어, 기존 협업관계의 웨스턴디지털이나 정부 심사 통과에 유리한 브로드컴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분석이다.
도시바는 시간에 쫓기고 있다. 상장이 폐지되면 주가가 폭락해 반도체 사업을 헐값에 팔아야 하거나, 매각이 중단될 수도 있다. 도시바는 2016년 4~12월 결산 발표를 두 차례 연기하다가, 지난 11일 감사법인의 승인도 얻지 못한 채 발표했다. 5762억엔의 영업적자와 함께 부채도 2256억엔으로 전년에 이어 부채초과에 빠진 것이 확인됐다. 2년 연속 부채초과면 상장폐지 사유가 된다. 상장폐지 결정은 일본거래소의 자율규제법인이 내린다. 살얼음판이다.
매각 추진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력한 후보로는 미국 웨스턴디지털이 꼽힌다. 이미 도시바와 협업관계인 데다, 최근에는 이를 근거로 독점교섭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휴 계약에 따라 반도체 메모리사업 매각은 자사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도시바는 메모리사업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대에게 매각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웨스턴디지털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법적 분쟁으로 번져 매각이 지연되면 상장폐지 문제와 얽혀 도시바가 벼랑 끝에 몰릴 수도 있다. 이에 도시바는 매각 진행을 잠정 중단한 채 웨스턴디지털과의 협상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유력 후보도 미국의 브로드컴이다. 미국 투자펀드 실버레이크 파트너스와 손잡고 약 20조원의 인수금액을 써냈다. 특히 브로드컴은 메모리가 아닌 통신 용도 전문 반도체 업체로, 각국 당국의 반독점 심사에서 웨스턴디지털이나 SK하이닉스보다 유리한 고지에 섰다. 브로드컴은 인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일본정책투자은행 등에 지분 참여도 유도하고 있다. 해외 기술 유출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일본 정부의 심사를 의식한 행보다. 브로드컴이 10% 정도의 투자를 요구했으나 일본 측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의 출자를 어느 정도 허용할지가 합작투자 성사를 가를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의 희망 인수가에 미치지 못하는 인수금액을 제시했다. 일본의 반한감정과 더불어 삼성전자 등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메모리시장 과점구도도 인수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은 그럼에도 “지금 진행되는 도시바 입찰은 바인딩(binding,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입찰이 아니라 금액에 큰 의미가 없다”면서 본입찰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SK하이닉스의 현금성 자산은 4조원 정도로 재무적투자자(FI)나 전략적투자자(SI)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최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 관련 검찰이 무혐의 처분하면서 출국금지 조치가 해제돼 행보가 자유로워졌다.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파트너 모색 등 인수전을 챙길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의 기피 대상 1순위인 대만 홍하이는 인수금액으로 30조원 이상을 부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애플과 공동출자를 제안했지만 화답을 얻지는 못했다. 홍하이는 자사 지분 참여 비중을 줄여 일본 정부의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시키려 하지만, 그럼에도 심사 통과 확률이 높지 않아 애플도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홍하이는 일본 소프트뱅크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역시 결과는 미지수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