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국민의당 박지원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정치9단’이라는 수식이 자주 붙는 정치인이다. 기민한 ‘정치력’과 연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정보력은 정치권에서 최고로 평가받는다. 호평하는 이도, 비판하는 이도 ‘박지원’이란 존재감만큼은 부인하지 못 한다. 하지만 최근 박 위원장의 이러한 존재감이 안철수 후보의 대선 행보에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안 후보의 보수표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호남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범보수 진영은 연일 안 후보를 찍으면 박 위원장이 대통령이 된다는 이른바 ‘안찍박’ 또는 ‘박지원 상왕론’으로 공세를 펴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중앙선대위원장은 23일 대전 유세에서 “(안 후보의) 선거 포스터를 보니 사진을 합성해 ‘얼굴은 안철수인데 몸통은 박지원’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안철수 정권이 아니라 박지원 정권이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른정당 지상욱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초대 평양대사가 되겠다는 박지원이 당을 좌우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 후보가 지금 약속하고 있는 안보 공약을 과연 실천할 수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범보수 진영이 박 위원장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은 안 후보에 대한 보수층의 전략적 투표를 막기 위한 것이다. 최근 안 후보의 지지율이 보수층의 지지에서 약세를 보이는 것도 중도·보수 표심의 이탈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 지난 2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보수권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의 안 후보 지지율이 48%에서 23%로 거의 반토막이 났고, 홍 후보가 이 지역에서 1위로 올라섰다. 보수성향이 강한 50대와 60대 이상 지지도에서도 각각 11%포인트, 9%포인트 하락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박지원 상왕론’이 호남 표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호남이라고 해서 박 위원장에 대해 긍정적 여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남에서 여전히 안 후보의 지지율이 열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보수 진영의 ‘안찍박’ 공세로 홍준표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도 “호남에서 그동안 안 후보를 지지했던 이유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박 위원장과 함께 하면서 안 후보의 새정치가 퇴색해 버렸다. 최근 목포와 광주 등 호남을 돌아보니 이런 기류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내에서는 박 위원장의 ‘2선 후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박 위원장이 후보 당선에 필요한 결단을 하면 될 것”이라며 “당내에서 박 위원장이 2선 후퇴해야 된다는 주장이 상당히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결국 박 위원장이 선거운동 막바지에 전략상 백의종군의 길을 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선대위원장직 사퇴는 기정사실화된 것이고, 사퇴 시기만 남았다는 것이다. 선대위 한 관계자는 “박 위원장이 결국은 사퇴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시기의 문제”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박 위원장의 공격력이 필요하다. 조기 사퇴는 민주당이 바라는 일”이라고 전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21일 전북 익산시 영등동 우리은행 사거리에서 시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